[런치리포트]여론조사의 정치학

머니투데이 김성휘 진상현 김태은 지영호 ,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기자 2016.01.1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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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총선여론조사 최소 500명·40% 룰 강화, 날림 조사 막을까
[런치리포트]여론조사의 정치학


올해부터 어느 국회의원 선거구 여론조사에서 20~30대 100명을 목표로 했다면 최소 0.4배(40%)인 40명은 실제 응답을 받아야 한다. 반대로 성·연령·지역별 응답자가 아무리 많아도 목표치의 2.5배, 즉 100명인 경우 250명은 넘을 수 없다. 유권자의 성·연령대·지역별 구성비 기준 여론조사 가중값 배율을 0.4~2.5 내로 제한하는 조치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가 선거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정확도 향상을 위해 조사기준을 강화, 이달부터 시행하면서 정치권과 여론조사업계에 파장을 준다.



공직선거법 선거여론조사 기준 개정에 따르면 가중값 배율기준 외 조사별 최소샘플(응답자) 수도 정했다. 대통령 선거 또는 전국단위 조사는 1000명, △세종시장을 제외한 광역시도 단체장 선거 800명 △국회의원·세종시장·기초단체장 선거 500명 △지방의원 선거 300명 등이다.

이를 어긴 선거 여론조사 업체에게는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선거 여론조사는 심의위에 등록된것만 보도할 수 있다. 따라서 기준을 어긴 조사를 인용보도하는 언론사도 과태료를 문다.



특정연령대 8배 과다조사…0.4~2.5배 이내로

14일 국회 등에 따르면 그동안 선거 여론조사 표본 크기와 가중값에 제한이 없어 논란이 지속됐다. 여론조사 결과의 정확도는 물론 여론조사라는 행위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당지지도 여론조사를 예로 들어보자. 특정 선거구에 최소 100명을 조사하기로 했는데 절반인 50명만 응답했다. 마침 응답자가 모두 새누리당 지지자라면 이 선거구의 정당지지도는 새누리당 100%가 나올 수 있다. 조사대상에 있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거나 중간에 끊은 50명의 성향이 반영되지 않았다.


극히 단순화한 가정이지만 최소 표본수를 채우지 못한 여론조사가 실제로 적지 않았다. 심의위는 2014년 지방선거와 그 후 재선거·보궐선거 관련 각종 여론조사들을 수집, 분석했다. 그 결과 특정 연령대에서 목표 응답자의 8배를 채운 조사도 있었다. 나머지 연령대에서 그에 걸맞은 응답자 숫자를 확보하려면 조사기간과 비용이 늘어난다. 정해진 시간과 비용 하에선 나머지 연령대 의견은 과소 대표될 수밖에 없다.

조사별 최소 샘플수와 가중값 기준이 설정되면 여론조사 정확도를 높이는 순기능이 기대된다. 반면 조사비용 증가 탓에 의뢰인과 조사업체가 위축될 수도 있다. 대개 여론조사시 특정연령이나 지역의 주민등록상 인구구성에 맞춰 목표숫자를 할당한다. 그 40%를 반드시 채워야 한다면 전화를 전보다 많이 돌려야 하고 조사기간과 비용이 더 필요하다.

ARS 방식 논란 재점화…정확도 개선 숙제
특히 ARS(자동응답시스템) 조사방식에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ARS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시간도 적게 들어 이른바 긴급 조사, 속성 조사에 매력적이다. 그러나 면접원 전화조사보다 최소샘플수를 채우지 못한 경우가 많은 걸로 알려졌다.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조사와 달리 기계가 불러주는대로 응답해야 하니 전화를 쉽게 끊어 조사가 중단될 리스크가 있다. 면접원은 특정계층이 과다 표집됐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자동화기계는 20대 청년이 자신을 60대라고 선택하는 등 허위답변을 걸러내기 쉽지않다.

물론 면접원 조사가 무조건 우월한 방식이라 할 수는 없다. 충분한 자격이나 경력을 못 갖춘 면접원이 조사를 한다면 신뢰하기 어렵다. ARS 조사라도 새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비용과 시간을 들이면 품질이 향상된다.

정치이슈가 급팽창하는 총선기간 거의 비용없이 싸게, 그러면서 신속하게 요구하는 의뢰가 급증하면 ARS든 전화조사든 똑같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업계에선 이 때문에 조사방식보다 비용 등 조사환경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치권에서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쪽은 정치인 개인, 정당, 언론, 그 외 정부나 관련기관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업체들이 새 기준을 충족하려는 노력을 하면 ARS 조사의 품질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관계자는 "표본의 대표성 확보로 여론조사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ARS 조사방식을 겨냥했다거나 특정업체를 퇴출시키려는 조치가 아니다"고 밝혔다.

상향식 공천 대세…날개 단 정치여론조사

정치권이 4월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표심을 읽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은 물론 상향식 공천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공천 과정에 여론조사가 필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각 정당에서 경선을 위해 발주하는 여론조사는 물론 경선 전략을 짜기 위한 각 후보자들의 발주까지 정치 여론조사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한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14일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 때 상향식으로 공천을 해 여론조사 수요가 역대로 가장 많았었다"면서 "이번 총선에서도 상향식 공천이 대부분 이뤄지면서 역대 최대 규모의 여론조사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는 이미 상향식 공천을 주로 하는 공천 원칙을 확정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당원과 일반 국민의 비율을 30대 70으로 하는 상향식 공천 틀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일부 우선 또는 단수 추천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도 전략공천 20% 가량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경선을 통해 후보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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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상향 공천 흐름은 과거 총선에 비해 크게 강화된 것이다. 중앙당 차원의 공천심사위원회가 결정하던 공천 방식에 경선을 통한 상향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부터다.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212개 공천 지역구 중 28곳(13.2%),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은 243개 공천지역구 중 83곳(34.2%)에서 경선을 치렀다. 18대 총선에서 하향식 공천으로 돌아갔던 여야는 19대 총선 때 다시 상향식을 도입하고 비중을 더 높였다. 당시 상향식 공천을 실시한 지역구는 새누리당이 47곳(20.3%), 민주통합당이 111곳(52.9%)이었다.

경선 방식도 동원, 조직 선거 부담이 있는 현장 경선 보다는 여론조사가 선호되는 추세다. 인심번호제 등 기존 여론조사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술들이 도입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안심번호제는 성별, 연령, 거주지역이 특정된 이동통신 사용고객의 번호를 임의로 바꾼 안심번호 형태로 제공받아 경선 여론조사에 활용하는 제도다. 기존 집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는 집전화가 없거나 직장생활 등으로 낮에 집을 비운 20~40대 젊은층의 지지도 조사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새누리당은 현장경선이 아닌 당원 전화조사와 국민 여론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여론조사시엔 안심번호방식을 도입키로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안심번호 도입 시 '국민공천단 100% 경선', 안심번호가 도입되지 않으면 국민공천단 70%, 권리당원 30% 비중의 경선을 치른다.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는 "경선을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지역구당 두 번의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결선투표를 가게 되면 횟수가 더 늘어난다"면서 "상향식 공천 확산으로 물량이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로 공천 승부가 날 가능성이 커지면서 각 후보들 입장에서도 민심 동향을 시시각각 파악해야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향식 공천이었을 땐 '공천=당선'인 여야의 텃밭 지역들에선 여론조사 보단 공천권자의 눈도장이 더 중요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민심 파악의 수단은 역시 여론조사다.

여론조사 결과 자체가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후보들이 민감할 수 밖에 없는 배경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한 언론사의 신년 여론조사가 불공정하게 진행됐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이의 신청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현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도가 다른 여론조사 결과보다 높게 나타났는데, 이것이 유도성 질문을 던진 결과라는 주장이었다.

한 소식통은 "새누리당이 국민, 당원 비율을 7대 3으로 결정하면서 후보들로선 이 비율에 맞춰서 경선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전략 수립 차원에서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후보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거 여론조사 자체가 선거운동" 비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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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면 선거이전 실시된 여론조사의 정확성이 도마에 오른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가 대표적이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대부분의 여론조사 결과는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한명숙 당시 통합민주당 후보를 10%p 이상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일 직전 시행된 방송3사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 오세훈 후보의 낙승이 예상됐다. 실제 투표결과는 개표 진행 내내 한명숙 후보가 앞서다가 막판에 겨우 오 후보가 한 후보를 따라잡아 0.6%p의 박빙으로 승리했다.

서울시장 선거 뿐 아니라 강원도와 인천, 충북 지역에서도 여론조사와 실제 개표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이면서 여론조사 방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당시 여론조사에 주로 쓰인 유선전화 조사방식이 통신기술의 변화와 달라진 생활 양식 등을 반영하지 못해 특정 세대를 지나치게 부각시키거나 실제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인식됐다.

이후에는 실제 전화를 사용하는 대상자를 무작위로 추출하고 유선전화와 휴대전화 조사를 혼합하는 등의 방식으로 정확도를 높이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유무선 혼합 비율이나 자동응답조사(ARS) 등의 방법적인 문제는 여론조사의 정확성에 대해 끊임없이 논란을 낳고 있다. 휴대전화의 경우 사용자의 거주지역을 파악하기 힘들어 지역 단위 선거에서 응답의 유의미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ARS는 비용이 적게 들어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이 사용하기 쉽지만 응답률이 현저히 낮아져 조사의 편향성을 초래한다.

여론조사 자체의 공정성이 시비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질문의 설계나 조사 방식 등을 애초에 특정 결과값을 염두에 두고 조작한 후 이를 통해 도출된 여론조사 결과를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이용된다는 의혹이 나온다.

특히 4·13 총선을 앞두고 지역별 후보 경쟁력 등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가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상당수의 예비후보들은 선거 여론조사가 사실상 선거운동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여론조사가 불공정한 방식으로 도출되는데도 마치 객관적인 결과인 것처럼 보도돼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주장이다.

경기도 고양덕양갑 지역구인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최근 총선 관련 여론조사들을 보면 특정 동들은 아예 조사 대상에서 빼버린 채 이뤄지고 있다"며 "불공정한 여론조사가 무분별하게 나오는 것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가 선거 결과 예측 뿐 아니라 각종 당내 경선이나 의사결정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기 위한 편법 동원이 논란을 일으키는 사례도 많아졌다.

2012년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의 당 경선 과정은 여론조사를 활용한 총체적 부정선거로 결론난 바 있다.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출마했던 서울 관악을 경선에서 응답 연령을 조작하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 확인되면서 후보에서 물러나게 됐다. 또 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는 소스코드 열람과 대리투표 등 조직적 부정 의혹이 드러났다.

최근에도 일반전화의 휴대전화 착신, 단기전화 가입, 특정 연령대 선택 등을 종용해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적발되고 있어 여론조사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덕현 한국갤럽 기획조사실 부장은 '선거시기 여론조사 정확성 제고방안'에 대해 "한국의 선거 여론조사는 전통적인 방법이 한계에 부딪혔으나 아직 새로운 조사방법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며 "언론보도의 허용, 방법공개, 면접원 인증제등 다양한 제도적장치를통해 연구노력을 촉진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8천억 리서치시장, 매출 1위는 정치여론조사…'한철 장사' ARS 제외

[런치리포트]여론조사의 정치학
"떴다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숫자를 어떻게 파악하나요?"

한 정치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정치여론조사기관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선거철 여론조사가 '한 철 장사'다보니 소득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조사산업 사업체수는 2013년 말 기준 411개다. 2008년 270개에서 5년만에 144개가 늘었다. 한국리서치, RNR, 갤럽, TNS, AC닐슨 등이 대표적인 리서치 기업으로 알려져있다.

산업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국조사협회의 회원사 조사 결과 2001년 2265억원에서 평균 10.6%P 성장해 2014년 770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7934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정치여론조사의 매출 비중은 가장 큰 18.0%를 차지한다. 조사협회 매출기준으로 볼 때 약 1400억원이 정치여론조사로 흘러들어갔다. 기업체의 제품에 대한 시장조사나 만족도 조사 등이 나머지 매출을 책임진다.

정치여론조사 매출 1400억원에는 떳다방식 ARS(자동응답전화) 방식의 여론조사기관은 제외돼 있다. 업계에서는 이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등록기준 3배수는 될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2013년 기준 조사 프로젝트 유형별 매출 구성비./자료=한국조사협회2013년 기준 조사 프로젝트 유형별 매출 구성비./자료=한국조사협회
여론조사 한 철 장사가 가능한 것은 손쉽게 조사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서다. ARS 방식의 여론조사는 문항을 만들고 질문을 녹음을 하면 직원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전화설문 대상자 정보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지만 정치권과 밀접한 이들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명단을 넣고 질문 녹음파일을 올리면 알아서 결과까지 뽑아주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김동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기획실장은 "ARS 여론조사기관을 만드려면 사장 한명에 직원 한 두명이면 충분하다"며 "그러다보니 부실한 여론조사가 이뤄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기관의 수입은 '사장하기 나름'이다. 관련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ARS 여론조사기관이 1회의 여론조사를 하기 위해 후보 1인에 요구하는 비용은 250만~300만원 정도다.

한번도 선거판에 뛰어들지 않은 '물정 모르는' 예비후보들에게는 500만원부터 호가가 시작된다. 여론조사 5회에 홍보물 및 선거전략지원 등을 묶은 '2000만원 패키지 상품'도 있다. 속칭 '호구'로 불리는 예비후보는 같은 지원을 받고도 억대 비용을 들이기도 한다.

한 국회 보좌관은 "정치신인들은 '정치를 시작하려면 몇억은 써야지'라고 생각해 여론조사기관을 비롯한 정치컨설팅 업체에 바가지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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