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국 황칠기능보유자, “문화재청장이 공예과정 봤으면”

더리더 박광수 기자 2016.01.0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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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기능보유자들 나라에서 등록·관리 등 적극 지원해야 전통 계승

구영국 황칠기능보유자, “문화재청장이 공예과정 봤으면”


UN-WRO(유엔 세계재활기구본부) 세계무형문화제 황칠기능보유자인 구영국 박사는 국가문화재보존협회장이다. 그는 동시에 국립이리스트대학교 종신석좌교수이자 미술학 박사다. ‘황칠명인’으로 통하는 그는 우리나라에서 200년 전에 절종됐던 황칠의 맥을 유일하게 잇고 있는 장인이다. 문헌에 따르면 황칠은 주로 왕실 한의학에서 많이 사용했던 물질이다. 왕실의 한의사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왕가의 치료법에만 쓰였다. 따라서 일반인들은 구경도 복용도 할 수 없었다.

구영국 박사가 작품에 황칠을 사용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구 박사는 “원래 가구를 만드는 데 황칠을 사용했지만 고가의 가구에 대한 수요층이 좁다보니 도자기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며 “도자기의 경우 국보 재현작업에도 많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가 국빈으로 방문한 외국 대통령에게 가장 많이 선물했던 작품이 황칠 공예라고 구 박사는 설명했다. 황칠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구영국 박사를 만나 황칠에 대한 설명과 장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어떻게 황칠을 공부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얘기다. 친구 부모님이 약국을 운영하셨다. 당시 약국을 운영할 정도면 잘사는 집안이었다. 한번은 이 친구 집에 놀러가게 됐는데 안방에서 최고급 자개장롱을 보게 됐다. 숨이 막힐 정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했다. 우연이 운명이고 필연이면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서울에 있는 자개 장인을 찾아 수련생으로 들어갔다. 1년은 정말 심부름만 했다. 청소하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기술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곁눈질로 배운 것은 옻칠 정도였다. 수련과정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1985년 무엇 때문에 가게 됐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우연히 김제 금산사에 가게 됐다. 막연하게 작품을 구상하러 갔던 것 같다. 절을 구경하고 있는데 노 스님 한분이 뒤에서 내 어깨를 치시면서 “이놈이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났구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잠깐 기다리라더니 호리병을 하나 건네주시길래 무엇인지 여쭸더니 “황칠수액”이라며 “이것을 평생의 화두로 삼아라”고 말씀하셨다. 이분이 1986년 입적하신 철안 스님이다.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던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중요성을 잘 몰랐다.

1년 남짓 배울 즈음 “비밀을 다 알고서야 세상에 알려라”라고 조언하시고 스님은 입적하셨다. 이후 난 다시 자개공방으로 돌아가 2000년까지 나전칠기와 옻칠을 배웠다. 그리고 비밀리에 황칠을 연구했다. 내가 황칠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200년에 절종됐던 황칠 맥이 철안 스님과 나로 인해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황칠은 무엇이며 어떻게 채취해야 하나

“전 세계적으로 일속일종 황칠나무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예전에는 황칠나무를 ‘황칠목’ ‘천근목’이라고도 불렀다.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소나무처럼 사시사철 푸른 나무다. 다 자란 나무의 높이는 15m 정도다.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황칠수액은 15년이 지난 나무에서만 채취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 완도 정자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00년 된 황칠나무가 있다.

수액채취는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화학처리하면 나무가 죽기 때문에 천연채취공법으로 채취해야 한다. 한 나무당 8.6g 정도밖에 채취하지 못하기 때문에 귀하다. 또 해풍을 맞고 자라야만 수액이 나오기 때문에 나오는 나무보다 안 나오는 나무가 더 많다. 특이하게 황칠수액은 처음에는 우윳빛깔인데 공기와 만나면 옻이 갈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황금색으로 변한다. 금보다 5배 정도 비싼 게 황칠수액이다.

중국은 삼국시대부터 황칠수액을 조공으로 바치라며 수탈해갔다. ‘해상왕’ 장보고 역시 가장 비싸게 거래한 품목이 황칠수액이다. 문헌에 다 나와 있다. 황칠은 식용으로도 가능한데 중풍, 신경통, 노화방지, 항암효과(간암, 자궁암), 골다공증, 치아미백, 피부재생, 아토피, 원기회복 등에 효과가 있다.”

언제쯤 명인으로 인정받았나. 그리고 명인이 되기까지 과정도 궁금하다

“가장 큰 타이틀은 UN-WRO(유엔 세계재활기구본부)에서 선정된 세계무형문화재 황칠기능보유자다. 선정되기 위해선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국제 논문이 있어야 하고 초대 개인전을 20회 이상 개최해야 한다. 또한 각 나라의 대통령에게 증정된 선물이 3개국 이상 되어야 하고 각국 대사들과 문화교류도 있어야 한다. 아울러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해외전문지에 그 내용이 소개돼야 하고 전승 능력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유일하게 턱걸이로 선정됐다. 내가 선정된 후 황칠은 전 세계의 문화재가 됐다.

황칠공예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하고 연구비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황칠을 연구하는 데 일평생 7억원을 썼다.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했다. 그때는 앞만 바라보고 달려간 것 같다. 장인은 이것저것 생각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장인이 아무나 못되는 이유다. 나도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는 생각에 끝을 보고 싶었다. “다시 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면 “못하겠다”고 대답할 것 같다.”
구영국 황칠기능보유자, “문화재청장이 공예과정 봤으면”
한 분야의 장인이 되려면 어떤 사상과 마인드를 가져야 하나

“바다는 작은 시냇물에서 시작된다. 이 시냇물이 굽어지고 넘어가고 밑으로 스며들면서 한군데로 합쳐져 바다가 된다. 수많은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고 바다와 같은 큰물이 되는 것이다. 장인은 이 시냇물과 같다. 모든 시련을 이겨내야만 장인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장인에게는 사상과 철학을 비롯해 동기와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철저한 정신이 없으면 장인이 될 수 없다. 특히 역사의 가치를 알아야 하고 역사의 징검다리가 돼 후배들을 이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민족관과 국가관이 있어야 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뿌리가 없는 민족은 다 망했다. 전통이라는 것은 뿌리찾기다. 우리 조상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이끌어나갔던 것처럼 이런 정신을 갖춰야 한다. 황칠은 이미 200년 전에 전통이 끊어졌다. 지금은 내가 그 끊어졌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나에게는 우리 역사를 다시 되찾는다는 사명감이 있다. 나보다는 우리 역사를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또 장인은 미래가 희망적인 장인이 되어야 한다. 옛날 것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고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선진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소리다. 답습과 재현만 하는 것은 소용없다. 전통을 바탕으로 미래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는 지난 것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과학의 시대인데 전통을 부여잡고 옛것을 복사하면 무엇하나. 이 시대에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장인의 정신이다. 숟가락은 맛을 모르지만 혓바닥은 맛을 안다. 장인은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낮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겸허해야 한다. 장인의 길은 겸손하게 가야 한다. 내가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해도 겸손해야만 내공을 쌓을 수 있다. 전통은 내공이 쌓이는 길이다.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파생적으로 봐야 한다. ‘허수’가 아닌 ‘실수’를 가지고 삶의 철학을 바라봐야 한다.”

어떤 작품들을 주로 만들었나. 만든 작품은 어디에 주로 전달됐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명성황후 어보를 황칠로 재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브라질 현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갖고 있다. 브라질 대사관을 통해 전달했다. 이 작품 외에도 스리랑카 라자팍셰 대통령, 루마니아 트라이안 버세스쿠 대통령, 오스트리아 하인츠 피셔 대통령, 사우디 나우프 공주 등 국빈 방문객들에게 황칠 공예품이 선물로 전달됐다. 전통과 예의를 중시하는 하토야마 일본 총리는 일본 총리 공관에서 무릎을 꿇고 선물을 받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아무 작품이나 받지 않는다. 대사관도 아무 작품이나 가져가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어떤 총리가 무릎을 꿇고 받겠나. 국빈 방문객들에게 전달하는 선물도 국익과 결부돼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외교다. 이런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밖에도 프랑스 공작 및 백작,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에 국빈 선물로 전달됐다. 청와대도 한국에서 가장 희소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황칠 공예는 한국의 왕실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죽어도 작품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좋은 음식은 먹고 없어지지만 작품은 유구한 역사로 남는다. 우리나라의 자부심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구영국 황칠기능보유자, “문화재청장이 공예과정 봤으면”
우리나라는 전통을 어떻게 평가하며 전통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각 나라마다 전통이 존재한다. 특히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은 전통을 중요시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을 중요시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외면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만 전통을 대한다. 문화적인 품위가 성숙해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진정한 전통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세대의 전통 작품은 다음 세대의 유물이 된다. 장인들도 지금 만드는 작품을 유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에만 요구하지 말고 장인들도 반성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국가는 장인들을 지원하고 후원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전통이 소외됐다고 하는 것이다.

또 전통이 살아남으려면 이 시대에 맞는 아름다움이 표현되고 생활화돼야 한다. 현대는 현대대로 가고 전통은 전통으로만 흘러가게 하면 안된다. 현대는 전통을 담아야 하고 전통은 현대를 이어 미래로 넘어가야 한다. 전통만으로는 현대사회에서 외면당한다. 현대가 전통을 안고 가야지 우리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 이게 가장 바람직한 전통문화이자 현대문화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전통과 현대를 분리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전통과 현대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미래는 맞물려가야 한다. 비전을 보여야 한다. 세계적인 작품으로 승화돼야 한다.”

현 세대의 작품이 유물이 되기까지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주길 바라나

“정부가 노력은 하고 있지만 장인세계의 특징적인 부분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실제로 어떤 작품을 심사할 때 이론과 실제가 격리된 경우를 많이 봤다. 이론과 실제는 같이 가야 한다. 또 심사위원을 제대로 뽑아야 한다. 제자가 스승을 심사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도권에서 끼워 맞추기 심사를 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다. 문화재 관련 공무원도 공부를 해야 한다. 자리만 옮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앞으로는 자기 역할을 분명히 할 수 있는 공무원들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공무원은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국민의 혈세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장인의 의견을 수렴할 줄 알아야 한다. 관료의 입장에서만 봐서는 안된다. 장인들도 공무원이 고생한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줘야 한다.

장인들도 공부해야 한다. 장인들은 이론적인 것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작품을 만들면서 석사, 박사까지 공부해야 한다. 나는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았다.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인도 논문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이론과 실제를 모두 아는 장인이 필요하다. 정부도 장인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특히 문화재청장이나 관련 장관들이 현장에 나와서 제작환경을 봤으면 좋겠다. 현장을 보지도 않고 지시만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지시를 할 수 있겠나. 현장을 보는 공무원이 됐으면 좋겠다. 인사동에 자주 와서 봐야 한다. 장인이 어떻게 일하는지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봐야 한다.”

정부의 문화재 관리가 소홀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국가 주요 문화재 관리에 지원되는 예산이 많지 않다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형문화재를 만드는 장인들에게 지원되는 금액이 월 130만원 정도다. 사실 장인들은 이 지원을 작품제작에 쓰기보다 급한 생활비로 쓰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능보유자라면 최소한 400만~500만원씩 지원돼야 한다. 안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국가 예산을 이런 데 많이 써야 한다. 처후개선에 대한 문제이자 문화복지의 문제다. 국가를 위해 일평생 희생한 분들에게 이런 복지를 해줘야 한다.

뿐만 아니다. 국가는 문화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아니고 지원해주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문화가 발전하겠나. 조달청에서 작품을 일부 구입해주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더 많이 구입해야 한다. 특히 한국도 이탈리아처럼 전국의 공예인들을 등록시켜야 한다. 국가차원에서 등록·관리해야 한다. 장인들 중에는 예능보유자와 기능보유자가 있다. 예능보유자는 그런대로 잘 되는데 기능보유자는 잘 안돼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 맥이 끊기는 것이다.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황칠의 대중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황칠의 생활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갑, 벨트, 컵, 접시 등 일반대중이 접할 수 있는 황칠공예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왕실문화라고 해서 ‘있는 사람’만 쓰는 게 아니라 일반인도 쓸 수 있도록 대중화하고 싶다. 이게 전통을 사랑하는 일이다. 내 주도로 만든 ‘천황칠’처럼 황칠수액이 복용할 수 있는 건강식품으로도 많이 나왔다. 앞으로 더 발전해 많은 식품이 나와야 한다. 황칠의 대중화를 위해 (주)천황칠의 장지원 대표와 황칠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 1979년 칠과 나전 입문
- 2003년 대한민국 옻칠공모전 심사위원
- 2005년 대한민국 문화관광상품대전 운영위원
- 2008년 올해의 작가상(본상 대상)
- 2009년 한·중 미술작가 거장전 및 작품공모전 심사위원장
- 2011년 제2회 대한민국공예공모전 운영위원장 및 심사위원장
평창동계올림픽기념 한국10대 작가 초대전 대회장 및 심사위원장
- 2013년 라오스 촘말리사야손대통령 선물 제작-2012 대통령 표창(제 7327호)
- 2014년 21회 초대 개인전(남산골 한옥마을 전통공예관)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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