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잘하네? 야근해" 군대식 문화에 멍든 이민자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2016.01.0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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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조' 이민경제, 新성장지도 그린다]<2>-②이민자 현실 들여다보니..."다문화 아이도 서울대 합격"

편집자주 우리나라가 정부 정책에 따라 2018년부터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인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인구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체류 외국인(이민자) 수는 200만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약 4%다. 이는 GDP(국내총생산)로 환산했을 때 60조원(2015년 GDP 1600조원 기준)에 달한다. 이민자들은 이제 대한민국 경제에 없어선 안 될 구성원이다. 머니투데이는 '2016년 신년기획'을 통해 우리 사회 이민자들의 현실을 짚어보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어떤 이민정책이 필요한지 진단해본다.

"한국말 잘하네? 야근해" 군대식 문화에 멍든 이민자


#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가르치는 미국 출신 교수 데이비드(가명, 38세)씨. 한국에 이민 온 지 6년이 지났다. 그는 한국 생활에 만족한다. 음식과 주거환경, 교통 등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 때문이다. 데이비드씨는 “외국인의 경우 대부분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외되고, 조직 운영 같은 부분이나 실무적인 부분에선 완전히 배제된다”고 토로했다.

이민 온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배타적 문화에 아쉬움을 나타낸다. 일반 국민처럼 생계를 꾸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푸대접 받기 일쑤다. 우리 경제의 한 구성원이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차갑다.
후지무라 다카히로(일본·25)후지무라 다카히로(일본·25)
◇"한국말 잘하네? 주말에 할 것 없으면 나와서 일 좀 하지?"=2013년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온 후지무라 다카히로(25)씨는 강압적인 군대식 문화와 살인적인 업무 강도에 못 이겨 회사를 그만 뒀다. 그가 다녔던 곳은 한 이러닝(e-Learning)업체. 처음에는 그러지 않던 대표는 후지무라씨가 상당한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돌변했다.



후지무라씨는 “외국인이라 조심스러워하다가 한국말을 잘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턴 한국식으로 대하기 시작했다”며 “퇴근시간이 넘었는데도 야근을 시키고, 주말에 할 일이 없으면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란 게 그의 생각이다. 자신처럼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을 찾은 많은 외국인들이 같은 상황에 직면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레이스 다드릴 박 재한필리핀인협회장(52·필리핀)그레이스 다드릴 박 재한필리핀인협회장(52·필리핀)
◇"본국에서의 경력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면…"=
재한필리핀인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레이스 다드릴 박(여, 52)씨는 한국에 오기 전 필리핀의 고위 공무원이었다. 그는 필리핀 대학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공부하고, 시청에서 국장으로 근무하고 지방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필리핀 현지에서 건설업을 하는 현재 남편을 만나 1999년에 한국에 들어 온 지 18년째다. 그러나 잠깐 영어 신문 편집일을 하는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그는 많은 이민자들이 본국에서의 경력과 인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씨는 “다양한 경력자들이 많지만 한국에 오면 그 기회를 살릴 수가 없어, 단순한 식당일이나 공장일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 필리핀 시장 진출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한국에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라 재한몽골인협회장(39·몽골)이라 재한몽골인협회장(39·몽골)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리와 지원은 투자”= 결혼 이민으로 2003년 한국에 정착한 재한몽골인협회장 이라씨(39)는 이민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씨는 “언론에서 갈등이 있는 다문화 가정을 찾고, 그런 사람들만 찾아서 보도를 한다”며 “이를 본 사람들은 ‘외국인들은 다 저렇게 사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학생의 학교 일탈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따져보니 일반 학생들과 차이가 0.1%도 나지 않더라”며 “다문화 가정에서 서울대를 보내고, 영재학교에 진학하는 등 좋은 얘기는 언론에서 다루지를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는 20~30년 뒤에 비용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을 투자로 전환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에 퍼져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뤄지는 초보적인 단계의 이민자 적응 프로그램을 취업을 위한 전문교육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매년 결혼 이민자가 꾸준히 들어오는데, 이 분들이 아이를 낳고 7~8년이 넘으면 일자리를 구한다”며 “이 부분을 제대로 준비 안 하면 나중에 큰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으므로 지금부터 꾸준히 기술과 학위 취득 등에 대한 교육을 하고 지원을 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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