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사빠 과학]"애들은 가라" 어른을 위한 '섹시하고 유쾌한 과학'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5.12.1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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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19禁 과학공연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사인·코사인·탄젠트' 그래프 이렇게 야하다니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공연의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공연의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


30대 직장인 여성 4명이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공연장을 나와 말했다. "첫 경험을 태블릿 OS(운영체제)랑 한거야", "아까 못봤어, 초음파 사진에 '아이폰'을 임신한 것으로 나오잖아, 어쩜 상상력도."

이 무슨 소린가? 지난 11일 저녁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 컨벤션홀에선 국내 최초 '어른들을 위한 19금(禁) 과학 코미디'를 표방한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SNL)' 공연이 막을 올렸다.



인류 진화, 화성, 동물행동학, 진화심리학 등 고상한 과학이론에 성(性)적인 코드가 뒤섞어 처음부터 끝까지 '야한 연극'으로 도배된 작품이다. 미국 NBC방송의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형식을 채용했다.

이 행사는 '페임랩(Fame lab) 코리아' 역대 수상자들과 한국과학창의재단의 과학소통 전문가들의 재능기부로 기획·제작됐다. 페임랩은 과학자나 일반인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3분 이내에 과학주제를 발표하는 경연대회다. 2005년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고, 지난해부턴 한국에서도 열리고 있다.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수학OS' 코너의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수학OS' 코너의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
이날 가장 큰 호응도, 그러니까 남녀관객 모두 얼굴이 빨개진 채 훔쳐보듯 한 공연은 이경오(서강대 분자면역학대학원)씨와 이보람(충북대 식물의학과)씨가 진행한 '수학 OS(운영체제)'였다.

인공지능 OS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 '그녀(Her)'를 본뜬 작품으로 전체 줄거리도 인간과 사랑에 빠진 수학OS에 대한 이야기다. 수학 OS의 몸체는 태블릿이다. 터치 기술의 발달로 이용자의 애무 강도까지 입력할 수 있게 된 태블릿이 그래프 높낮이로 쾌감을 나타내는 엉큼함이 관전 포인트다. 연애감정에 대한 행위를 수학적으로 기술한 재치가 돋보였다. 수학OS가 이용자인 보람공주에게 "난제들이 모두 풀릴때까지 너를 사랑한다"며 남다른 프로포즈를 던지자 객석에선 피식 웃음이 새나온다.

삼각함수인 '코사인(cos)-사인(sin)' 공식으로 만든 그래프는 'T팬티', 탄젠트(tan)가 나타낸 그래프의 미끈한 S곡선은 '꿀바디', 원 2개가 겹쳐 있는 벤다이어그램과 그래프 변곡점에 분홍색 점은 '여성의 가슴'을 형상화했다. 19금 공연을 지향한 SNL의 야한 수위는 한 마디로 '베드신 빼놓고 다있다'이다. 하지만 객석에서 터지는 '아~'는 몰랐던 내용을 새롭게 배웠을 때 유익함의 '아!'였다.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소개팅사무소'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소개팅사무소'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
공연은 총 6개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인간과 동물이 소개팅을 한다는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동물의 매력과 특성을 전달하려한 '소개팅 사무소'가 눈길을 끈다. 젊은 한 남성이 '섹시한 짐승녀'를 소개해 달라고 신청한다. 짐승녀는 몸매에 자신감이 있어 지나치게 옷을 짧게 입는 여자를 뜻한다. 맞선 당일, 진짜 짐승이 나온다. 기니피크 수컷이 나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인간을 유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객석에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코너를 기획한 이세인(이화여대 불어불문·과학기술경영학과) 씨는 "기니피크 수컷의 10%는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다"며 "개·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들의 '행동 다양성'을 알려주고 싶어 기획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게임의 법칙'의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게임의 법칙'의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
'게임의 법칙'은 타짜의 기술 등을 심리학과 연결하는 기발한 발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송영조(KAIST 바이오뇌공학과대학원)씨는 "옛날 포커대회 우승자는 수학자였지만, 최근엔 심리학자들이 프로갬블러로 나와 포커대회 메달을 휩쓸고 있다"며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실제로 어떤 트랙도 없이 동공의 크기, 숨소리, 표정, 몸짓 등으로 상대가 쥔 패를 맞춰보는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SNL은 관객층이 폭넓었다. 중간에 자리를 뜨는 관객도 찾을 수 없었다. 공연을 끝까지 본 한 관람객은 "과학·수학에 문외한 일반 대중들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말했다.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랩랩'의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랩랩'의 한 장면/사진=한국과학창의재단
다양한 장르를 뒤섞어놓은 퓨전식 공연으로 지루할 틈도 없었다. 중간 '랩랩(LAB RAB)'이란 코너는 강한 비트의 힙합에 '다이어트의 실효성'을 꼬집는 톡톡 튀는 가사말을 넣어 '미니 콘서트'처럼 연출했다. "다이어트(DIET·식이요법) 해로워, 다이어트 괴로워, DIET에 T를 빼면 다이(DIE·사망)"라는 반복되는 후렴구가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대중에게 강하게 전달됐다. 이를 보던 관람객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손뼉을 치는 등 열띤 호응을 나타냈다.

공연은 △전반적으로 소박하고 단순한 일상의 줄거리 △어렵지 않고 시사성 있는 과학이론 △ 인간의 존재와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묵직한 주제 등이 강한 하모니를 이뤄 대학로의 보통 연극들처럼 대중들 입맛에 맞는 상업극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였다.

이번 행사 총감독인 김재혁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원은 "SNL은 기존 언어유희 개그 방식에서 벗어나 서양의 '논리 코미디'란 새로운 웃음코드를 과감하게 채용한 것으로 관객들의 호흥도가 예상보다 높았다"며 "SNL과 비슷한 공연들이 자주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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