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 구인구직만남 취업박람회에서 이주여성들이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 이주여성 상당수가 한국인 남편의 경제적 수준을 모르고 결혼했으며, '자격지심'에 이주여성들의 취업을 막는 남편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 사진=뉴스1
결국 남편은 2012년 과음한 상태로 A씨를 무차별 폭행했고,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미 A씨는 뇌사 상태였다. 4일 후 A씨는 세상을 떠났다. 한국으로 시집온 지 11년만이었다.
◇'쉼터' 찾은 이주여성 절반 "남편 알코올중독·정신병 몰랐다"=남편의 정신장애나 알코올 중독 등 병력을 모르고 결혼한 경우가 조사 대상의 절반에 가까운 15건에 달했다. 베트남에서 온 B씨(32·여)는 "남편은 끼니 때가 돼서 '밥을 먹으라'고 해야 오고, TV를 보면 혼자 중얼거리거나 벽을 쳐다보고 얘기하기도 한다"며 결혼 전에는 이같은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한숨지었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결혼이주여성들이 쉽사리 이혼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귀화'에 악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혼 후 이주여성들은 통상 2년의 체류 비자를 발급 받은 뒤 귀화 신청을 하게 되는데, 남편의 인터뷰가 이주여성 귀화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저개발국가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꿈꿨던 결혼이주여성들에게는 민감한 대목이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은 "국적 취득 과정에서 남편이 부정적으로 발언하면 탈락하기 때문에 폭행 습관이나 정신 질환 등을 뒤늦게 알게 돼도 참을 수밖에 없다"며 "국적 취득과 관련된 일종의 '공적 권력'을 남편에게 주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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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남편들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함에도 이주여성의 경제 활동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즈벡 국적 C씨(31)는 "내가 남편보다 훨씬 더 경제적 능력이 좋은데도 남편이 일을 하지 못하게 했는데, '자격지심'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조모씨(51)가 베트남에서 귀화한 전 부인(30)과 딸(6)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로 발견됐다. 사건이 발생한 서울 오금교 인근 경사로./ 사진=서울 구로경찰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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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옥금 주한베트남 공동체 대표는 "이주여성들은 남편과 시댁의 불신 속에서 살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 결혼이주여성은 한국 남편의 실제 모습에 실망해 이혼했는데도, '국적 취득을 위해 날 이용했다'는 남편의 착각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묻지마식 '속성결혼'이 이어진다면, 오금교 다문화가족 살해 사건과 같은 비극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지난해 결혼이민자 중 4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4.2%가 '결혼중개업체나 중개업자를 통해 배우자를 만났다'고 답했다. '가족 또는 친척의 소개'(4.9%)나 '친구 또는 동료 소개'(3.7%) 등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허오 사무처장은 "속성결혼은 통상 첫날 맞선 본 후 다음날 결혼식을 올리게 돼 부부간 신뢰감이 형성될 수 없고, 경제적 부문 등에서 상대적 자신감이 결여된 남성들은 신혼 때부터 여성의 결혼 의도를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한 것'으로 의심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양측 모두 상대방의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불량' 중개업체들에 대한 감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