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과 공유지의 비극

머니투데이 양영권 기자 2015.12.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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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보는세상]

"리콜을 왜 받나요, 연비가 떨어질 게 뻔한데. 미국처럼 상품권·쿠폰이나 줬으면 좋겠어요."

폭스바겐 티구안을 모는 한 지인은 "리콜을 받을 것이냐"라는 물음에 이같이 대답했다. 그의 티구안은 최근 환경부 조사에서 불법 조작된 배출가스 재순환장치 프로그램을 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모델이다.

EA189 디젤 엔진이 장착된 티구안은 급가속을 하고 에어컨 등을 켜면 배출가스재순환장치의 작동이 중단됐다. 실내에서는 국내 인증 기준의 최대 7.6배, 실제 도로 주행에서는 미국 인증 기준(한국에서는 2017년 실도로 배출가스 관리 기준이 도입된다)의 최대 31배에 달하는 질소산화물이 배출됐다.



질소산화물은 자동차 엔진 내부의 높은 온도 때문에 공기 중의 질소가 분해돼 만들어진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디젤 배출가스의 주된 구성물질이다.

환경부가 EA189 엔진을 쓰는 폭스바겐 차량 15종 12만5500대에 대해 전량 리콜 명령을 내린 것은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정상 작동하게 해 그만큼 대기 오염을 줄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정작 폭스바겐 차주들 사이에서는 차의 연비나 성능이 떨어질 수 있다며 거부할 조짐이 인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차량 소유주들에게 보낸 사과문에서처럼 '주행상 안전에 대해서는 기계적인 문제가 없기 때문'에 리콜을 안 받는 것이 '스마트'한 선택으로 보인다.

배출가스 논란에도 폭스바겐 차량은 최근 국내에서 대대적인 가격 할인으로 기록적인 판매량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모델은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오히려 싼 값에 차를 구입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소비자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해 기존 폭스바겐 차량 보유자들에게는 조만간 미국의 사례처럼 경제적 보상 또는 배상도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오늘도 발암물질이 포함된 공기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는 일반인들의 피해는 누가 배상할 것인가.

AP통신에 따르면 질소산화물 흡입으로 미국에서만 매년 약 5만 명이 심장질환으로 숨진다. 당장 우리 아이가 감기를 달고 사는 것이 배기가스를 조작한 폭스바겐 때문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폭스바겐 측은 한국법인 대표가 국정감사에 나와 사과 한마디 하고, 일간지에 사과 광고 한번을 돌리는 것으로 일반인들을 위한 조치를 끝내려 하는 듯하다.

우리의 대기는 주인이 없다. 그래서 누구나 더럽혀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빠지면 공동체 전부가 걷잡을 수 없이 피해를 본다. 공유지는 모두가 사용하는 공간이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만 자신의 책임은 다하지 않는 장소로 변하기 일쑤다.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지만, 그 공유지를 더럽힌 기업이 건재하고, 그 기업의 제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가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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