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巨山' 잠들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김태은 김성휘 최경민 김승미 ,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기자 2015.11.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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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종합)

'통합과 화합' 남기고 떠난 '巨山'…서거에서 영면까지

22일 오전 0시 22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병으로 서거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 김영삼 전 대통령 기록전시관에 김영삼 전 대통령 모형이 전시돼있다. 2015.11.22/뉴스1  22일 오전 0시 22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병으로 서거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 김영삼 전 대통령 기록전시관에 김영삼 전 대통령 모형이 전시돼있다. 2015.11.22/뉴스1


2015년 11월22일 일요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각. 대한민국의 제 14대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전국에 전해졌다. 서거 시간은 0시22분이었다. 최근 수년 동안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몇차례 알려지긴 했지만 워낙 갑작스러운 서거였기 때문에 휴일밤 달콤한 휴식을 취하던 국민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비보였다.

김 전 대통령이 치료를 받던 서울대병원의 오병희 원장은 새벽에 긴급 브리핑을 열고 "김 전 대통령이 과거부터 반복된 뇌졸중과 협심증, 폐렴 등으로 수차례 병원에 입원한 끝에 숨졌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는 "너무 쉽게 가셨다"며 갑작스러운 서거였다고 설명했다.



'YS키즈'라고 할 수 있는 상도동계 정치인들은 상주 역할을 하기 위해 모였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마자 가장 먼저 빈소로 달려왔다. 김 전 대통령의 상도동 집을 드나들며 정치계에 입문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나는 YS의 정치적 아들"이라고 밝힌 후 김현철씨와 부둥켜 안고 오열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상주 역할을 하기 위해 나왔고, 한때 김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은 줄곧 빈소에서 통곡을 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역시 김 전 대통령이 발탁했던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전남 강진 토담집에서 하고 있던 칩거를 풀고 한 걸음에 빈소로 올라와 상주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서거가 큰 울림을 준 것은 '통합'(統合)과 '화합'(和合)을 마지막 메시지로 남겼다는 사실이었다. 아들 김현철씨는 지병으로 말을 잘 하지 못하던 상태여서 유언을 남기지 못한 김 전 대통령이 2년전쯤 마지막 메시지로 이 두 단어를 붓글씨로 남겼다고 전했다. 김씨는 "평소에 안 쓰시던 것인데 이건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여쭸는데, '우리가 필요한 것'이라고 하셨다"고 설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2015.11.25/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2015.11.25/뉴스1
김 전 대통령의 메시지 처럼 그가 마지막으로 누운 빈소는 화해의 장이 됐다. 그가 민주화를 위해 싸울 때 대립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조문을 왔다. 정적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직접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10년이 넘게 투병 중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아들 노재헌 변호사를 빈소에 보내 정중하게 조의를 표했다.


YS와 필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업 전 의원은 어머니인 이희호 여사를 부축하고 빈소에 나타났다. 권노갑 새정치연합 상임고문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빈소를 찾았으며, 야권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등 유력인사들이 모두 나서 조문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 장례위원에도 권 상임고문 등 동교동계 인사가 대거 포함되며 장례 키워드가 '통합과 화합'임을 분명하게 했다.

비가 오기도 했지만 4대그룹(삼성·현대차·LG·SK)의 총수 모두가 조문을 오는 등 문상객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22일 빈소가 마련된 이후 영결식과 안장식이 열린 26일 오전 11시까지 약 3만6900명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또 행정자치부는 국회를 비롯해 각 시도별로 1개소 이상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을 맞았다. 각 지자체별로 마련한 분향소 조문객은 19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기간에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에 가려져있던 문민정부 구성,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실시 등 과감한 결단과 개혁이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아침마다 조깅을 즐기고, 칼국수를 주로 먹으며,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명절마다 'YS 멸치' 선물을 보내던 인간적이고 소탈한 면까지 부각되기도 했다.

그리고 26일 눈이 내리는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안장식이 열렸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유족과 여·야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열린 영결식 자리를 비장한 표정으로 지켰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훌륭한 애국정신을 본받아 후배들이 개혁을 완수할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는 "당신께서 싸워 이루신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지만, 후배들에게 남겨진 몫"이라고 말했다.



빈소의 '정치적 아들들'…조문 정치가 남긴 것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22일 새벽 0시 22분 급성심부전증과 패혈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서거했다. 국가장으로 거행되며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발인은 26일.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22일 새벽 0시 22분 급성심부전증과 패혈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서거했다. 국가장으로 거행되며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발인은 26일.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이 26일 국회에서 거행됐다. 김무성, 문재인,  여야 대표가 분향을 마친 뒤 돌아오고 있다. 2015.11.26/뉴스1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이 26일 국회에서 거행됐다. 김무성, 문재인, 여야 대표가 분향을 마친 뒤 돌아오고 있다. 2015.11.26/뉴스1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기고 간 것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였다. 민주화와 개혁에 대한 고인의 업적이 오늘날 정치권에 투영되면서 빈소에 모인 이들에게도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YS 재평가' 바람이 불고 있다. 단순히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한 예우 차원을 넘어섰다. 20~30년 김 전 대통령이 활동하던 시대적 상황과 현재 그의 '정치적 아들들'이 이끄는 우리 시대가 묘한 대조를 이뤄 과거 그의 삶을 부활시켰다.



◇'YS 재평가'의 나비효과?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말 맞은 외환위기로 국민적 지탄 속에서 쓸쓸한 퇴임을 맞았다. 서거 직전까지도 그의 정치 인생은 경제 분야의 과오로 뒤덮였다. 그러나 서거 후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대통령 당선 이전 민주화 투쟁과 대통령 재임 시 수행한 개혁 등 업적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의도라며 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역사 바로세우기'를 통해 5·16을 ‘군사혁명’에서 군사쿠데타로 정정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이 박근혜 대통령과 대척점에 위치해 있다.



빈소에서는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정치권의 반성이 화두에 올랐다. 박근혜정부의 독선적 리더십과 불통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무기력한 야당의 리더십 실종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며 지금의 정치권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양김(김영삼·김대중) 등장 이후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고 성숙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갔다”며 “(여야 정치인들은) ‘두 분의 뜻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라는 말을 먼저 했어야 한다”고 쓴소리했다.

◇'정치적 아들'들의 경쟁, 무엇을 노리나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이 재조명되자 빈소는 잠룡들이 그의 정치적 후계자를 노려 도약과 재기를 모색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가장 먼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나는 YS의 정치적 아들"을 선언하며 빈소를 지켰다. '상도동계' 막내로 정치권에 입문한 경력과 PK(부산경남) 지역 기반 등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김무성 대표는 조문 기간 내내 상주 역할을 자처하며 후계자 이미지를 쌓았다.

김 대표가 'YS의 적자'로서의 정체성을 부각하는 것은 박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선언이란 해석도 제기된다. 김 대표는 여권의 차기 주자로 박 대통령의 견제에 줄곧 굽히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결코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이 아니란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분석에서다.



새누리당 내에선 김 대표가 장례기간 내내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킨 것이 박 대통령으로서는 껄끄러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김 대표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또다른 '정치적 아들'을 불러들였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강진 토굴에 은거하며 정치권과 거리를 둬왔지만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 행보다운 행보를 처음으로 재개했다.

본인의 부인에도 야권의 차기 주자 잠재력을 높게 평가받고 있는 그가 장례기간 동안 매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정치적 인연을 되새기는 것에는 개인적인 추모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정치권은 'YS'가 생전에 손 전 고문을 처음 정치권으로 불러들인것처럼 '죽은 YS'가 손 전 고문을 정치권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손 전 고문은 정계 복귀에 대한 언급은 피하면서도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우리 국민들에게 담대한 용기를 가지라고 일깨워주셨다"며 "이제 김 대통령이 가신 것을 계기로 통합의 새로운 역사를 우리 국민이 함께 써 나가기를 바란다"며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다.

◇'YS 유산' 넘보는 자와 지키려는 자



내년 총선을 앞두고 'YS의 유산'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도 빠질 수 없다. 김 대표의 '정치적 아들' 발언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치적 불효'라고 비판했고 '상도동계' 원로들은 '정치적 치매'라고 지적했다.

문민정부 첫 국무총리를 지낸 한완상 전 총리는 "유신체제로 돌아가는 확실한 지표가 국정교과서인데, 이 상황에서 YS를 보고 정치적 대부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 일에 앞장서며 충성경쟁을 하는 것을 보면 (YS가) 기막혀 했을 것"이라며 김 대표를 겨냥해 강하게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상도동 출신'들은 '민주계'의 정체성이 상당 부분 흐려졌으나 상당수의 인사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며 박 대통령의 반대편에 섰다. 친박(친 박근혜)계로 흡수돼 박근혜정부 탄생의 핵심 역할을 한 김 대표와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는 인사들을 대신해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쟁적으로 김현철씨 영입 경쟁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25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한 뒤 접견실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왼쪽)씨와 대화하고 있다. 2015.11.25/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25일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한 뒤 접견실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왼쪽)씨와 대화하고 있다. 2015.11.25/뉴스1
◇'7분 조문'과 '10분 조문'의 차이



정치권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인 만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는 그와 악연으로 얽힌 옛 정적들까지 불러들였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던 응어리를 풀고 영결식을 하루 앞둔 25일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직접 빈소를 방문해 약 10분 간 머물었다. "YS와 역사적 화해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끝까지 답하지 않고 방명록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전두환'이라고만 남겼다. 거동이 불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장남 노재헌씨를 대신 보내 "정중히 조의를 표하"도록 했다.



이들의 조문이 35년 간 얽힌 악연을 다 풀기는 부족했지만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떠올리는 덴 부족함이 없었다.

박 대통령 역시 과거 김 전 대통령과 불편했던 관계를 묻고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빈소에 머문 시간은 7분. 애도의 메시지를 글로 남기지는 않았다. 영결식 당일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발인은 직접 지켜봤지만 영결식 본행사에는 불참했다.


하나회 척결 vs 외환위기…다시보는 YS 4대 공과



[런치리포트]'巨山' 잠들다
26일 영결식과 국립현충원 안장을 끝으로 영면에 든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저평가된 대통령이란 견해엔 이견이 적다. 금융실명제 도입, 군사정권을 이끌었던 군의 핵심 사조직 '하나회' 척결 등 굵직한 업적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측근의 전횡으로 정치가 왜곡됐고 외환위기 즉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사태로 많은 국민이 고통 받은 기억도 여전하다. 서거를 계기로 정치권이 앞다퉈 나선 '재평가'가 맹목적인 '고평가'여선 안되는 이유다.



하나회 척결vs 외환위기 충격=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1993년 8월 12일 극도의 보안 속에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제'를 전격 발표했다. 어느정부도 감히 하지 못한 미완의 개혁 과제를 특유의 추진력으로 밀어붙였다. 음성 자금을 양지로 끌어내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됐단 평가다.

군 사조직 '하나회'를 숙청해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을 없앴다. 문민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여러차례 하나회 문제가 거론됐지만 김 전 대통령은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그러다 임기 초반 전광석화같이 움직여 군부의 반발을 무력화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학살 책임과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하나회의 대표주자 격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재판에 세웠다. 올해로 20년을 맞는 지방자치제 부활도 김 전 대통령 때 이뤄졌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수출 10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하지만 임기말인 1997년 외환위기는 그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꿨다. 대기업 연쇄부도, 금융기관 부실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 결과였지만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정경유착의 쓴 대가이기도 했다.

노동법 날치기 처리는 평생 의회주의자로 살았다는 고인의 자랑을 무색케 하는 오점으로 남아 있다. 아들 현철 씨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측근들을 앉히고 사실상 국정을 농단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임기 후반 부정적 평가의 배경이다.

마지막 메시지 '통합·화합'…재평가 배경은 총선?



김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1970-80년대 민주화 투사로 오랜 기간 탄압을 이겨낸 모습을 국민 뇌리에 깊이 남겼다. 사상 첫 국회의원 제명, 목숨을 건 단식투쟁 등 그는 야권 지도자이자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우뚝 섰다.

정치권은 이 때문에 그의 긍정적인 면을 재평가하자는 기류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계승하는 새정치연합도 뒤지지 않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YS의 정치적 아들을 자처하면서 가장 앞장서고 있다. 그는 26일 영결식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김 대통령이 이룩한 개혁 업적이 저평가돼 왔는데 이제는 역사적 재평가를 할 때가 됐다"며 "후배들은 그런 개혁을 완수할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도 "하나회 척결로 다시는 군부가 정치에 깊게 개입할 수 없는 확고한 조치를 취했는데 지금은 당신께서 평생 온몸으로 싸워 얻은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며 "이제는 후배들에게 남겨진 몫이란 생각"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발탁해 정계 입문한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도 "김영삼 대통령은 가시면서도 새로 역사를 썼다"며 "통합과 화합의 역사를 썼고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배울 수가 있었다"고 했다.
단 최근 재평가 분위기는 정치인들이 일반 여론을 앞지른 면이 있다. 빈소에서 '위인' '큰별'로 칭한 이들은 대개 정치인이다. 무엇보다 여야 모두 고인을 계승하겠다고 나서 며칠동안 빈소를 지킨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둔 '빈소정치'로 평가됐다.

고인의 선거 역정에도 공과 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15대 총선은 김 전 대통령이 '사람'을 알아보는 선구안과 파격적인 공천을 통해 인재를 대거 영입한 성공사례로 꼽힌다. 동시에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자금을 여당의 총선 자금으로 썼다는 이른바 안풍사건이 벌어진 때이기도 하다.

IMF 구제금융 사태는 비록 극복했다지만 이후 대한민국의 사회경제적 구조가 극적으로 달라졌다. 그 결과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 역동성이 떨어진 영향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3당합당으로 '문민 대통령' 집권 돌파구를 열었지만, 그 결과 지역주의가 더욱 고착된 것도 여전한 숙제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선 일방적인 저평가도, 일시적 분위기에 편승한 과도한 고평가도 자제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YH, 민주화, 조깅, 대구탕…YS의 추억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사저와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위치한 동작구 상도동으로 향하고 있다. '화해와 통합'을 유언으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유해는 이날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2015.11.26/뉴스1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사저와 김영삼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위치한 동작구 상도동으로 향하고 있다. '화해와 통합'을 유언으로 남긴 김 전 대통령의 유해는 이날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된다.2015.11.26/뉴스1


지난 22일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마지막 국립묘지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대통령, 정치인, 민주화 투사,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의 '김영삼'을 회상했다.
'민주투사'이자, 친근한 동지,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회고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YS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금융실명제는 일본도 못하고 있어. 일본 정상들 만나면 자기들이 그거 해보겠다고 하는데 아직 못했어"(지난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YS의 업적으로 하나회 척결을 언급하자)

◇"내가 조그마한 성의로 '박정희 대통령이 괴롭혀 드린거 조금이라도 좀 위안을 드릴 수 있었으면 해서 옆에 와 있다'는 애기를 한 번 (YS에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조용히 웃으십디다."(지난 22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 전 대통령과의 60년 세월을 회고하며)



◇"에너지를 다 쓰신 것 같아. 기를 쓰고 다 가셨어. 암이나 이런 질병은 (피부가) 새카맣게 되는데 안 그러셨다."(지난 25일 정의화 국회의장,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표정이 편안해보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YH여공 사건 이거 엄청 큰 일이었다. 훌륭한 일 많이 했는데 IMF 때문에 다 묻혀가지고 안타깝지."(지난 2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적어놓은 신문기사를 보다가)

◇"우리당 창당 60주년 기념행사할 때도 다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고 싶어했습니다. 40대 기수론 때 김대중 후보에 패한 뒤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김대중 후보 지지연설하는데 그게 엄청났죠. 우리나라 야당사에서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지난 22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 업적을 회고하다가)



◇"언론사 정치부장들이랑 식사를 잡아놨는데 나는 5분전에 갔는데, YS는 벌써와서 다다미방에 혼자 뒷짐지고 서성거리고 있더라. 약속을 정말 칼같이 지키는 분이다. 사적인 약속이든 뭐든 항상 5분, 10분전에 가 계신다."(지난 24일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신의 정치입문 당시를 설명하다가)

◇"각하는 매일 오전 5시에 조깅을 뛰셨다. 캄캄할 때. 35년 동안. 그러니까 저것 하나만으로도 대통령 되심에 충분하다고 누가 그랬어."(지난 24일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하다가)

◇"밤에 찾아가면 직접 와인을 꺼내주셨죠. 심지어 주일날 아침에 가면 당신 옷갈아 입는 침실까지 들어오는 것을 허용해주실 정도로 인간미가 넘쳤습니다."(지난 23일 이낙연 전남도지사, 본인의 기자시절 YS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YS는 자기가 '돈 정거장'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이 있더라도 돈을 다 나눠주다 보니까."(지난 25일 강인섭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 전 대통령과의 과거 추억을 회상하며)

◇"다정다감하신 아버지였어요.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정치력을 발휘하는 순간에는 정말 위대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죠."(지난 25일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 김혜숙씨, 기자들과 대화 도중)

◇"인자하신 분이었고 직원들을 참 편안하게 잘 대해주셨습니다. 거제에서 올라온 대구로 맑게 끓인 대구 지리탕을 좋아하셨어요."(지난 25일 전 청와대 주방장 이한규씨, 김영삼 전 대통령을 15년 동안 모셨다고 밝히며)



◇"한 번은 왔다 가는 것인데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지요.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습니다."(지난 22일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스님, 빈소에서 유족을 위로하며)

'통합과 화합'의 5일… 사진으로 본 'YS 배웅' 10 장면

22일 새벽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빈소에는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빈소를 찾은 과거의 정적들은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한 거목 '김영삼'을 추억했다. 그의 마지막 메시지처럼 빈소는 '통합과 화합'의 공간이었다. 결정적 순간들을 꼽아본다.



휠체어에 탄 김종필 전 총리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휠체어에 탄 김종필 전 총리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
1. JP의 헌화

YS의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종필 (JP) 총리는 22일 휠체어를 타고 빈소에 도착했다. JP는 국화 꽃을 들고 10초 정도 묵념한 뒤 헌화 후에 두손을 깍지낀 채로 오랜시간 묵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한 뒤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조문한 뒤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2. 김무성의 눈물 '나는 정치적 아들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2일 아침 일찍부터 빈소를 찾았다. 김 대표는 기자들에게 "저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라며 "고인의 가시는 길까지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빈소에서 오열을 쏟아내기도 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22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남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가 22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남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3. '맹순이' 손명순 여사의 슬픔

'맹순이' 로 불렸던 손명순 여사는 22일 오전 10시 15분 검은 상복 차림으로 빈소에 도착했다. 손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뒤늦게 사랑하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들은 손 여사는 "춥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상도동계 1세대로 불리는 최형우 전 의원이 22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상도동계 1세대로 불리는 최형우 전 의원이 22일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4. 오른팔 '최형우'의 눈물

22일 낮 12시께 백발이 성성한 한 노인이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참지 못했다. 상도동의 '좌형우 우동영'으로 불린 최형우 전 장관이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최 전 장관의 눈물은 모두를 숙연케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11.22/뉴스1
5. 생일을 빈소에선 보낸 '상도동 키드' 손학규

22일 68번째 생일을 맞은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전 상임고문은 자신을 정계에 발탁한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강진 토굴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손 대표는 이날부터 야권을 대표하는 상주를 자처하며 빈소를 지켰다.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차남 홍업씨,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2015.11.23/뉴스1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차남 홍업씨,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2015.11.23/뉴스1
6. YS와 DJ 두 미망인의 만남

23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93)가 휠체어를 타고 빈소에 도착했다. 경호원에 부축을 받으면서 분향한 이 여사는 접견실 안쪽 다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YS의 미망인 손 여사를 만났다. 이 여사는 작은 목소리로 손 여사에게 "위로드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 여사는 이 여사에게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화답했다.



이회창 전 총재의 방명록 글귀이회창 전 총재의 방명록 글귀
7. 이회창 전 총재의 방명록 '음수사원'

23일 빈소를 찾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방명록에 '음수사원(飮水思源)', 김영삼 대통령의 서거를 깊이 애도하면서'라고 썼다. 이 전 총재는 김무성 대표에게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서 왔는지를 생각하라는 뜻이거든.. (지금은) 민주주의가 생활화 돼 마치 공기처럼 어디서 왔는지 생각 안 한단 말이야. 가장 (민주화의) 주역에선 분이 YS이시니 그런 글을 썼다"라며 뼈아픈 충고를 남겼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15.11.25/뉴스1  전두환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15.11.25/뉴스1
8. "역사적 화해'엔 침묵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방문

23일 오후 4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빈소를 찾았다. 전 전 대통령은 아들 현철씨를 향해 "고생을 많이 했다"고 위로했다. 빈소에 8분여간 머문 전 전 대통령은 돌아가면서 "YS와 역사적 화해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세례를 받았지만 대답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런치리포트]'巨山' 잠들다
9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배웅

박근혜 대통령은 26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다시 방문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까만 정장 차림의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 영정이 운구차에 실려 국회의사당으로 출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애도를 표했다. 박 대통령은 건강 문제로 영하권 날씨에다 야외에서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는 국회 영결식에 참석하기 어렵게 되자 대신 빈소에 들러 고인과 작별을 고했다.



[런치리포트]'巨山' 잠들다
10. 김수한 의장의 눈물 추도사

서거 소식에 제일 먼저 달려온 김영삼민주센터이사장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까지 함께 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섬겨오신 진정한 문민 정치가였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끝내 김 전 의장은 "그렇게 사랑하던 조국, 그렇게 사랑하던 국민, 그렇게 사랑하던 동지들을 남겨놓고 이렇게 홀연히 가셨나"며 눈물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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