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상도동 주택가. 골목 오른쪽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이다./사진=머니투데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날 0시22분 서울대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아침나절 상도동 자택 주변은 적막했다. 인적은 드물었다. 퍼스트레이디(영부인)였던 손명순 여사가 집에 있다는 소식에 취재진, 경호인력들만 분주하게 움직였다.
상도동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지켜본 역사의 현장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79년 외신인터뷰에서 미국을 향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철회를 요구했고 그 결과 신민당 총재직 박탈·국회의원 제명과 함께 이곳에 가택연금됐다. YS 제명은 부마(부산·마산) 항쟁을 촉발했고 그는 자택 전화로 항쟁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랬던 상도동 자택은 1992년 김영삼 대통령 당선 뒤 떠들썩한 분위기도, 임기 말 혹독한 여론의 냉대도 겪으면서 그 자리에 서있었다. 격동의 시간을 견딘 것이다. 세월은 흘러 YS는 정치일선을 떠나고 마침내 이날 세상도 떠났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 앞. 김영삼(金永三) 문패가 선명하다./사진=머니투데이
오전 9시, 유가족으로 보이는 여성이 검은 상복차림으로 택시에서 내려 자택으로 들어갔다. 그 뒤 45분, 주차장 문이 열리며 검은 에쿠스 승용차가 집을 나섰다. 자택 앞의 긴장감도 조금 풀렸다. 한 주민은 "아침에 뉴스 보고 (서거 소식) 알았다"며 "안타깝지, 아쉽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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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을버스가 다니는 길로 골목을 빠져나오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너무나 평온한 일상이 펼쳐졌다. 할아버지는 손주들 손을 잡고 놀이터를 찾았다. 골목길 조그만 카페는 언제나처럼 문을 열었다. 성경을 손에 쥔 주민들은 삼삼오오 교회로 향했다. 조금전까지 경찰이 상주하는 골목 안, 높은 담장 아래서 긴장감에 휩싸였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문득 이 평화가 어디서 온 걸까 궁금했다. YS 서거를 처음 접하고 꽤 혼란스런 기분이었다. 이른바 '공과'에서 공도, 과도 많아 종합적 평가라는 게 쉽지 않다.
'공'은 대개 민주화 운동과 대통령 임기 초기, '과'는 임기 중후반에 집중되니 시기적으로도 공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그의 과가 이후 국민의 삶에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줬단 점에서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를 불러온 것은 전국민에게 트라우마를 남겼고 3당합당으로 지금의 보수우위 정치지형을 만든 점은 야권의 비판을 받아왔다. 아들의 정치적 전횡은 또 어땠던가.
그럼에도 민주화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온한 일상을 가능하게 했다. 정치지도자가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회, 제도, 문화적 안정 말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역사에 굵직한 줄기라면 그 한가운데 YS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평화는 대한민국 모든 구성원의 성취인 동시에 김영삼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오전 10시30분, 해가 높아지며 상도터널 윗동네 골목골목에도 볕이 들었다. 비로소 몸이 녹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