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서거]저평가된 대통령…실명제·하나회척결 '새 한국' 초석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2015.11.22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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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재임 중 공과 뚜렷…외환위기로 평가 추락

 (서울=뉴스1)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은 설을 맞아 1월 기록으로 보는 대통령 주제를 "대통령의 새해맞이"로 선정하고 역대 대통령의 다양한 새해 모습을 담은 기록물을 대통령기록 포털(www.pa.go.kr)을 통해 공개한다고 28일 밝혔다.   사진은 1998년 김영삼 대통령의 신년휘호. (국가기록원 제공) 2014.1.28/뉴스1 (서울=뉴스1)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은 설을 맞아 1월 기록으로 보는 대통령 주제를 "대통령의 새해맞이"로 선정하고 역대 대통령의 다양한 새해 모습을 담은 기록물을 대통령기록 포털(www.pa.go.kr)을 통해 공개한다고 28일 밝혔다. 사진은 1998년 김영삼 대통령의 신년휘호. (국가기록원 제공) 2014.1.28/뉴스1


21일 0시22분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공과 과가 어느 대통령 보다 뚜렷하게 갈렸다.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부활 등 우리 정치, 사회, 경제의 틀을 바꾸는 굵직한 개혁들을 끌어냈지만 임기 후반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이라는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해 전국민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임기 후반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역대 대통령 평가 설문에서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그가 이룬 업적을 감안할 때 저평가돼 있는 대통령 중 한 명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한국 사회 틀 바꾼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 = 고 김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금융실명제 도입과 군부 정권을 이끌었던 군의 핵심 사조직 '하나회' 척결을 든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93년 8월 12일 극도의 보안 속에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제'를 전격 발표했다. 5공 정부 시절 '장영자ㆍ이철희 사건'을 계기로 10년 넘게 검토했으나 '감히' 옮기지 못한 미완의 개혁 과제를 특유의 추진력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음성자금을 이용한 금융 거래가 억제되고 시장원리에 입각한 금융시장의 가격 기능이 회복돼 금융 자율화 기반이 이뤄지는 초석이 됐다. 또 경제 성장의 동전의 양면 처럼 여겨졌던 음성 자금들을 양지로 끌어내면서 부정부패를 막고 공정 과세를 이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은 또 군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육사 14기가 주축인 '하나회'를 숙청해 군사문화를 청산했다. 하나회는 1951년, 4년제 육군 사관학교 첫 입학생 중 영남 출신 생도,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박병하 등 5명이 조직했던 5성회가 시초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 등 군부 정권을 거치면서 군은 물론 정치권까지 아우르는 거대 권력의 상징처럼 여겨졌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93년 4월2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동빙고동 군인아파트에 익명의 군인에 의해 소속 인사 명단이 살포되는 등 하나회 문제가 본격 부상하자, '군정 종식' 슬로건을 내세워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진행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학살 책임과 12.12 군사정변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하나회의 대표주자였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하나회 관련자 상당수가 재판에 회부됐다.

올해로 20년을 맞는 지방자치제 부활도 김 전 대통령 때 이뤄졌다. 김 전 대통령은 1995년 그전까지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임명해 내려보내던 시도지사를 주민이 직접 뽑는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제를 도입해 지방분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자신과 가족 재산을 공개해 여론이 지지를 받았고, 임기 중 북한에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수출 10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는 등 경제성장의 가속도를 붙인 것도 김 전 대통령의 재임 때였다.



◇외환 위기가 모든 평가 뒤집어= 임기말인 1997년 터진 외환위기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바꿔놨다. 문어발식 확장과 방만 경영으로 인한 대기업들의 연쇄부도와 금융기관의 부실이 악순환의 고리가 되면서 우리 경제를 사정없이 추락시켰다. 이는 단기외채의 급증을 불러왔고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 위기 속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상당기간 경제주권을 넘겨야 했다. 아들 현철 씨가 청와대와 국정원 등에 측근들을 앉히고 사실상 국정을 농단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김 전 대통령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배경이다.

김 전 대통령 시절에는 대형 사건 사고도 유독 많았다. 1993년 10월10일 여객선 서해 페리호가 전북 부안군 앞바다에서 침몰해 29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고 1994년 10월21일에는 서울 성수대교 붕괴됐다. 1995년 4월 2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공사장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건으로 101명이 사망하는 등 24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해 6월29일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무려 501명이 사망했고, 1997년 8월6일에는 대한항공 여객기가 괌에서 추락해 승객 승무원 229명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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