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또라이 CEO가 회사를 망가뜨린다"

머니투데이 강상규 소장 2015.11.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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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로드]<43>'핵심습관' 고치기…위기에 처한 한국경제와 기업 회생 방안

편집자주 i-로드(innovation-road)는 '혁신하지 못하면 도태한다(Innovate or Die)'라는 모토하에 혁신을 이룬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살펴보고 기업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 “알코아를 미국 최고의 안전한 회사로 만들겠습니다. 우리 목표는 무사고입니다.”

1987년 당시 세계 최대의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알코아(Alcoa)는 거듭된 투자 실패로 이익이 줄고 시장에서 제품 경쟁력은 추락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회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 등 전사적인 목표를 세웠지만 5만명 노동자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심지어 노동자들은 경영자의 인형을 만들어 불 태우는 등 대규모 저항과 파업으로 맞섰습니다. 결국 알코아는 CEO가 교체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합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외부에서 영입된 폴 오닐(Paul O’Neill) 신임 CEO는 10월 어느날 뉴욕 맨하튼의 한 호텔에 월가의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을 불러 놓고 첫 간담회를 가집니다. 으레 이런 자리에서 신임 CEO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통한 영업이익 개선을 강조하고 주주가치 제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표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닐은 구조조정이나 기업이익, 주주가치에 대한 한 마디 언급 없이 엉뚱하게도 알코아를 미국 내 최고의 안전한 회사로 만들겠다는 얘기만 늘어놓습니다. 당연히 관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고, 불만을 가진 몇몇이 회사의 재고량이나 자본비율 등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도 오닐은 직원의 안전을 앞으로 회사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할 뿐이었습니다.

# “어느 또라이가 새 CEO로 와서 회사를 망가뜨리고 있다.”



오닐의 발표가 끝나자 월가의 투자자들은 성급히 간담회를 빠져 나갔고 저마다 자신의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기에 바빴습니다. 그리고는 알코아 주식을 전부 팔아 치우라고 말을 합니다. “어느 또라이가 새 CEO로 와서 회사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월가의 투자자들은 직원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한 신임 CEO의 말을 규제 강화로 이해했고 이를 위해선 기업이익마저도 양보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대 경영학의 기본 원칙은 경영자는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임 CEO의 발표는 경영학의 기본 원칙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오닐이 월가 투자자들로부터 소위 ‘또라이’로 낙인 찍히고 알코아 주식이 매도 리스트에 오른 것이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 “알코아 순이익은 오닐이 퇴임할 때까지 5배 증가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월가 투자자들의 우려와 달리 알코아는 1년 뒤 사상 최대의 이익을 기록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회사의 순이익은 지속적으로 증가, 오닐이 퇴임한 2000년엔 순이익 규모가 무려 5배나 늘어났습니다.



알코아 주가도 덩달아 5배가 뛰었는데 특히 오닐의 재임기간 동안 주주들에게 지급한 배당금만 해도 100%가 넘었습니다. 이로써 알코아는 다우지수(Dow Jones Index) 내에서 가장 우량한 주식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물론 안전사고율은 현격히 감소해 평균 일주일에 한 건 정도의 안전사고가 일어났을 뿐이고 몇몇 공장에선 수년간 안전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알코아의 안전사고율은 미국 전체 평균의 20분의1 수준으로 떨어져 오닐의 희망대로 미국 전체,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회사가 됐습니다.

# “핵심습관(keystone habits)이 알코아를 최고의 우량주와 안전한 회사로 만들었다.”



1987년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당시 알코아는 오랜 타성에 젖어 좀처럼 변화되기가 어려운 덩치 큰 회사였습니다. 노조와의 갈등도 심했구요. 이런 회사는 CEO가 어느 날 갑자기 생산성과 효율성 개선 명령과 지시를 내려도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저항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알코아 전임 CEO는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오닐은 이런 알코아에 ‘직원 안전’이라는 말 한마디로 변화를 불러 일으켰고 나아가 5배 이상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의 비밀은 다름아닌 알코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찾은 데 있습니다. 경영학에선 이런 근본 문제를 핵심 습관(keystone habits)이라 부릅니다.

그는 알코아에 산적한 수많은 문제점을 찾아서 모조리 뜯어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 하나를 찾아내 이를 고치면 나머지 문제들은 연쇄적으로 자연스럽게 고쳐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게다가 안전사고를 줄이자는 오닐의 제안에 대해 회사나 노조 그 누구도 반대할 명분이 없었구요.



이런 오닐의 분석은 그대로 적중했습니다. 알코아가 안전사고를 줄이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자 여타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선 노조가 그렇게 반대하던 노동자들의 생산성과 효율성 측정이 선행돼야 했고 중간 간부들이 반대하던 현장 근로자의 권한 확대도 필요하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이 하나둘씩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레 생산성과 효율성이 향상됐고 기업이익은 오르게 됐습니다.

지금 한국경제와 기업이 처한 상황은 1987년 당시의 알코아와 흡사합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창조경제를 내걸고 노동개혁과 기업 구조조정 등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지만 윽박지르거나 밀어붙이기식으로 해서는 알코아 전임 CEO와 같이 실패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그 대신 오닐이 적용했듯이 우리도 병든 한국경제와 기업을 연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내 그것에 온 역량을 쏟아 부으면 여타 문제들은 순차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1970년대 ‘잘 살아보세’라는 단순한 구호가 한국사회에 큰 변화를 안겨다 주었듯 정체된 지금의 우리를 변화시키려면 핵심 습관을 찾아 그것부터 고쳐 나가야 합니다.



한꺼번에 모든 걸 뜯어 고칠 수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오닐이 꿰뚤어 본 '직원 안전'이라는 핵심 습관의 분석력과 지도력이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알코아에 대한 내용은 『The Power of Habit: Why We Do What We Do in Life and Business (2012, by Charles Duhigg)』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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