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빈 항아리와 인공지능

머니투데이 장윤옥 테크M 편집장 2015.11.11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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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옥 기획취재부 부국장장윤옥 기획취재부 부국장


옛날 어떤 나라의 신하들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이웃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단단한 철을 쉽게 만들어내는 기술을 알아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몇몇 대신들은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술이니 얼른 배워, 널리 퍼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이나 농기구 등의 도구를 철로 만들 수 있으니 쓰임새가 늘고 효용도 커질 것으로 기대했다.



다른 대신은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이 철을 쉽게 만들게 되면 무기가 늘어나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존 철 기술자들이 일을 못하게 되면 먹고 살 방법이 없어지고 세금도 제대로 걷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 나라의 대신들은 철 만드는 기술을 배워 와야 할지 말지, 의견을 정하지 못해 시간만 보냈고 결국 철 기술을 가장 마지막에 쓰는 나라가 됐다. 갑자기 늘어나는 무기를 어떻게 통제할지, 예전 기술자들을 어떻게 교육시킬지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채 말이다. 아무 것도 없는 빈 항아리만 손에 든 채 안에 물건을 담을지 말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갑자기 무슨 철기시대 이야기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어딘지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인공지능을 둘러싼 논쟁이 그렇다.

인공지능은 요즘 사회학자나 기술 전문가들 사이에서 논쟁이 뜨거운 주제다. 일반인들도 관심이 높은 분야다. 가장 민감한 사회이슈인 일자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로봇이나 컴퓨터 시스템이 발전하면 나의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엄마까지 아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직업을 추천해줘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단순한 작업을 대체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의료 진단이나 기사 작성 등 그동안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분야로 적용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광범위한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에 대비해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할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준비는 미흡한 게 현실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지, 줄어든다면 어떤 분야에서 어느 정도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이 불안해 할 만큼 앞선 우리가 인공지능 기술을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 등 전 세계의 기술기업들이 인공지능 개발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우수한 인재를 끌어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 도요타 같은 자동차 기업마저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전담 회사를 설립한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 기업들의 인공지능 기술 적용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기계학습 같은 인공지능 기술은 당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많은 이용자 정보를 오랫동안 축적하고 효율적으로 분석해야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만큼 전략적인 투자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력이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지금 당장 우리 기업들이 이용자들을 위한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머지않아 외국의 기업들이 우리에게 잘 맞는 철제 도구들을 팔러 올 것이다.

이제 텅 빈 항아리만 손에 들고 걱정하는 대신 어떤 기술을 담을지, 그 기술을 어떻게 지혜롭게 쓸지 현실적인 고민과 노력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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