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가자"…교과서 벽 못 넘은 청와대 5자회동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2015.10.2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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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회동 전부터 신경전…물러설 수 없는 전선 속 강경 발언만 난무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회동을 갖고 있다. (청와대) 2015.10.22/뉴스1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부터),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종걸 원내대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회동을 갖고 있다. (청와대) 2015.10.22/뉴스1


청와대 5자 회동이 '빈손' 성과로 끝났다. '역사교과서 전쟁' 한복판에서 청와대와 야당이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강(强)대강(强)' 대결로 흘렀다.

청와대 5자 회동은 25일 오후 3시 예정대로 열릴 때까지 삐걱거림의 연속이었다. 청와대가 여야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포함한 5자 회동을 제안하자 야당은 원내대표를 제외한 3자 회동을 역제안했다. 한정된 시간 속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확실히 담판짓겠다는 의도에서다. 원내대표들이 참석하면 아무래도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예산안과 주요 법안 등으로 의제가 분산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번 회동에서 정기국회 내 예산안과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등 민생 현안에 대한 당부가 주 목적인 만큼 야당의 의도를 수용하지 않았다. 여기에 대변인 배석까지 허용치 않겠다고 밝혀 야당으로선 시작부터 청와대에 지고 들어간 셈이 됐다.

그런만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모두발언에서 대통령의 국정 독주를 비판하는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회동에 앞서 문재인 대표는 대변인 배석 불가 등의 청와대 방침을 두고 "쪼잔하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회동 모두발언에서는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왜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더 나아가 "국정교과서는 헌법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라며 정부 방침 철회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올바른 역사 만들려는 노력이 정치문제로 변질됐다"고 강하게 맞섰다. 야당이 역사교과서 문제를 정쟁으로 몰고가고 있다고 간접적으로 힐난한 것이다. 또한 "국민통합 위해 자랑스러운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며 국정화의 불가피성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새누리당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정치권 일각의 유신 미화 의도 등의 주장과 상관없이 잘못된 역사 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국정화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회동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야당과의 타협 대상으로 삼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대한 강공이 정기국회를 우위로 이끌어 갈 협상카드 뿐 아니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국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방안으로 보고 있다.



야당 지지자들의 절대 다수가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물론 수도권을 중심으로 국정화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보다 앞서는 추세다. 여기에 '친일·독재 미화' 프레임으로 박근혜정부의 정체성 문제까지 걸고 넘어지고 있는 만큼 이번 회동에서 이를 주요 화제로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새누리당 의원은 "야당 지도부가 상당히 강한 어조로 역사교과서 문제를 어필할 것으로 보이고 대통령도 국정화 불가피성을 강조할 가능성이 커 회동 전부터 잘 될 것 같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고 전했다.

회동 성과에 대해서도 큰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새누리당 김 대표와 원 원내대표는 이번 회동에서 다음달 중 의료사업지원법과 관광진흥법 처리에 대한 야당과의 합의에 진전이 있었다고 전했으나 합의사항이 도출된 것은 없고 여야 간 공감대를 확인했다는 데 의의를 뒀다.

김 대표는 "(지난 3자 회동 때처럼) 그렇게 할(합의사항을 도출할) 필요는 없다. 각자 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표는 "회동에서 일치되는 이야기는 딱 하나,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단든 것이었다. 그것도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쳤다"며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역사인식이 상식과 너무 동떨어져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5자회동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파동' 이후 당청 관계의 무게중심이 청와대로 확실히 실린 점이 극명히 드러나기도 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청와대에 대한 건의사항 제안보다는 역사교과서 문제나 정기국회 현안 등에 대해 박 대통령을 거드는 역할에 그쳤다.

회동이 시작되기 전 참석자 간의 환담에서도 김 대표보다는 최근 '신박(신 박근혜)'으로 떠오른 원 원내대표가 대화를 주도해 당청 간 주도권의 달라진 모습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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