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휘의 PQ]천하장사 이만기, 정치를 왜 하는가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15.10.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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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1980년대 이만기키즈의 우상…끈질긴 정치도전의 명암

편집자주 PQ는 Political Quotient의 머릿글자. 알파벳 P와 Q는 컴퓨터 알파벳 자판 양끝에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좌우 양끝 사이 어디쯤에 최적의 '정치 지수(PQ)가 있는지 답을 찾는다.

이만기 새누리당 김해을 당협위원장. 2013년 '우리동네 예체능' 현장/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이만기 새누리당 김해을 당협위원장. 2013년 '우리동네 예체능' 현장/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1980년대 어느날. 부산 남구의 부산KBS 공개홀 복도에서 그를 만났다. 천하장사 이만기.

그는 1982~1991년 씨름선수로 활약했다. 이만기식 호쾌한 씨름에 열광하는 '이만기키즈'가 적잖았다. 뒤집기, 들배지기… 발밑의 흙을 박차고 자기보다 큰 상대를 눕히는 모습이란. 이씨가 최근 한 방송에서 "그때는 씨름이 인기, 지금 김연아보다 인기 많았다"고 했는데 결코 빈말은 아니다.

그날 KBS 공개홀에서 씨름대회가 열렸다. 그를 마주친 것은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아마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려 했던 모양이다.



"사인 해달라고 해봐."

아버지가 등을 떠밀었다. 너무 긴장했던 걸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말았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속으로 '우와, 이만기 만났다'고 여러번 되뇌었던 것 같다.



이씨는 겁없는 신예 강호동의 등장 후 은퇴했다. 그 후 24년, 그때의 초등학생 이만기키드는 아이아빠가 됐고 그는 교수·씨름해설자·방송인으로 변신했다. TV 속 그는 때로 왕년의 운동실력을 뽐내고, 때로 장모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인간미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정치도전이다. 그는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불출마선언으로 공석이 된 당 김해을 당협위원장을 맡으면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21일엔 경남 고성군수 선거지원차 고성에 간 김무성 대표와 함께 했다.

이만기가 선수로 활동하던 1980년대 씨름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주용(수원시청)이 27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열린 2015 추석장사씨름대회 한라장사(110kg이하) 결정전에서 승리한 모습(대한씨름협회 제공).  2015.9.27/뉴스1이만기가 선수로 활동하던 1980년대 씨름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주용(수원시청)이 27일 경상북도 상주에서 열린 2015 추석장사씨름대회 한라장사(110kg이하) 결정전에서 승리한 모습(대한씨름협회 제공). 2015.9.27/뉴스1
그는 집요하면서 끈질기다. 2000년 16대, 2004년 17대 총선에 마산에서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16대엔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지만 받지 못했고, 17대엔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같은 지역에 재도전했지만 이번엔 한나라당 후보에게 졌다.


이쯤 되면 한나라당에 애증이 겹칠텐데, '증' 보다는 '애'가 컸나보다. 인제대 교수로 김해에 자리잡은 그는 지난해 6.4 지방선거때 새누리당 소속으로 김해시장에 도전했다.

올해 당협위원장을 맡아 내년 총선에 성큼 다가선 것도 우연한 행운이기보다 줄기차게 문을 두드린 결과다. 씨름판에서 거의 질 것같던 경기를 뒤집기 한판으로 이기곤 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지금까지 그가 왜 정치를 하려는지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단지 모래판에서 보여줬던, 지고는 못 배기는 승부욕 때문일까. 잦은 방송출연도 결국 정치도전을 위한 포석이었을까. 그렇다면 수많은 '이만기 키즈'에게 실망만 주는 건 아닌가.

어린 시절 우상의 모습 그대로 남아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집요하게 정치를 갈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김해시장 혹은 국회의원이 된다면 무엇을 목표로 어떤 정치를 펼칠 것인지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해 발전"이야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못받았던 '이만기 사인'을 다시 받을 기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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