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쇼핑에 푹 빠진 유커, 이러다 명동 텅빌라

머니투데이 도쿄(일본)=김유경 기자 2015.09.15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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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엔저+면세확대'로 유커 폭발적 증가…日 외래관광객 사상 첫 2000만명 돌파할듯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유커(遊客·중국인 여행객)의 일본 방문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올 들어 일본을 찾은 유커 숫자가 두 배 이상 급증해 사상 첫 외래 관광객 2000만 명 돌파에 주역이 되고 있다.

14일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일본을 방문한 외래관광객은 전년 동기대비 46% 증가한 914만 명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유커는 116% 급증한 217만 명. 여름 휴가철에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일본으로 넘어간 관광객까지 감안하면 올해 방일 유커는 500만 명을 넘어 방한 유커 수를 따라 잡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도쿄 번화가 곳곳에서 유커를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신주쿠역 인근 빅카메라(BIC CAMERA) 쇼핑몰에서는 많은 유커가 니콘, 캐논 DSRL 카메라(디지털 렌즈 교환식 카메라) 등 IT제품 쇼핑에 몰두해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내, 자녀 1명과 중국 난징에서 왔다는 호우위씨(35)는 일본 여행에 1인당 1만1000위안씩 총 3만3000위안(약 600만원)을 썼다고 말했다. 여행 경비의 2배 가량인 6만 위안(약 1100만원)에 달하는 쇼핑 비용은 별도다.



일본 도쿄 신주쿠역 인근 빅카메라(BIC CAMERA) 쇼핑몰 지하1층/사진=김유경 기자일본 도쿄 신주쿠역 인근 빅카메라(BIC CAMERA) 쇼핑몰 지하1층/사진=김유경 기자
일본을 찾은 유커의 1인당 여행지출비는 지난해 23만1753엔(약 228만원)을 기록했다. 한국인이 일본에서 쓰는 경비(1인당 7만5852엔)와 비교하면 유커는 3배 이상의 경제효과를 주는 VIP고객이다. 장기불황에서 이제 막 벗어나려는 일본으로서는 유커 유치에 사력을 다할 수 밖 에 없다.

일본이 유커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엔저 현상과 함께 면세확대 조치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쇼핑매력이 커지면서 한류로 무장한 한국과 맞설 경쟁력을 확보했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관광경쟁력 순위에서 일본은 9위, 한국은 29위다. 일본은 높은 물가수준으로 가격경쟁력부문에서 119위로 평가됐지만 엔저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도 밀리지 않게 됐다.

일본 도쿄 긴자거리에 면세점 라옥스에서 관광버스에 탑승하는 유커들 모습/사진=김유경 기자<br>
일본 도쿄 긴자거리에 면세점 라옥스에서 관광버스에 탑승하는 유커들 모습/사진=김유경 기자
게다가 일본정부는 지난해 10월 면세품 가격 한도를 1만엔 초과에서 5000엔 초과로 낮추고 면세품목도 사치품에서 소비재로 확대하는 등 면세제도를 대폭 개선했다. 그 결과 일본을 찾은 유커의 면세 이용률은 제도 시행 전인 2014년 7~9월 38.3%에서 올해 1분기에는 64.4%로 크게 늘었다.


'차이나쇼핑타운'으로 불리는 도쿄 긴자(銀坐) 거리로 나가보면 유커들의 쇼핑열기가 실감난다. 차량이 통제되는 주말에는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씨가 안경을 구입했던 미츠코시 백화점부터 라옥스(Laox)면세점이 있는 긴자 7정목(丁目)까지 왕복 2차선 도로가 유커를 위한 쇼핑거리로 탈바꿈된다. 특히 라옥스면세점 앞은 패키지 여행객들의 집결장소로 이용돼 차량통제가 풀리는 오후 6시부터는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중국인 관광객이 북적거린다.

유커의 일본 여행 만족도 역시 높다. 한국과 일본을 모두 여행해 봤다는 천이씨(28·남)는 일본의 만족도가 더 높다고 답했다. 남편과 함께 패키지로 첫 해외여행을 왔다는 장스징씨(25·여)는 "일본 자연환경이 예뻐서 여행에 만족한다"며 "다음에는 개별여행으로 일본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비자발급 완화를 검토하는 등 유커 유치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보리 마모루 JNTO 이사는 "지금은 오키나와와 지진피해지역인 동북지방만 중국 관광객에 복수비자를 발급하고 있지만 앞으로 일본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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