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없는 김영란법 개정안…표결 뒤집는 의원들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2015.08.2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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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개정안 서명한 20명 중 15명 표결 땐 찬성…입법부 권위 스스로 실추

이른바 김영란법 등 국회 본회의를 압도적인 찬성률로 통과한 법안들에 대한 이의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던 국회의원들이 법안 시행도 되기 전에 개정을 추진해 스스로 입법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민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속해있는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농림·축산·어업 활동으로 생산된 생산품과 그 가공품을 제외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김영란법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법안에는 김 의원을 포함해 20명의 의원이 서명했다.



'반성'없는 김영란법 개정안…표결 뒤집는 의원들


김 의원은 명절 선물용 농림·축산·수산물 상당수가 5만원인 현실에서 김영란법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농어민들은 명절 특수임에도 불구하고 곶감, 한우, 과일을 1박스 조차도 판매할 수 없게 된다는 현실론을 들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인 이상민 새정치연합 의원도 농축수산물 문제를 비롯해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너무 넓다며 김영란법의 전체적인 수정 및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행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농수축산물 등을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신정훈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김영란법 시행령이 5만원 이하의 농축산품만 선물로 인정한다면 농업인들의 매출감소가 4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김영란법 시행에 있어 농축산물 예외조항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박(친 박근혜) 핵심으로 통하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도 한국농축산연합회, 축산관련단체협의회와 공동으로 '합리적 김영란법 시행령 제정을 위한 국내 농축산업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발언이 예외 적용을 두둔한 것으로 알려지며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농수축산물 등에만 예외를 둘 경우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금품수수 허용 금액을 높이면 법안의 취지가 퇴색돼 시행령 만으로는 문제를 제대로 해소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런 개정 움직임과 관련해 압도적으로 찬성 표결을 했던 법안에 대해 시행도 되기전에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충분히 걸려내고 최종적으로 본회의 표결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데 뒤늦게 문제 삼음으로써 정책 혼선을 일으키고 스스로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경우에도 논의 과정에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통과를 원하는 국민 여론 때문에 의원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막상 시행을 앞두고 농어민 등의 우려가 나오자 이번엔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 뒤늦게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반성'없는 김영란법 개정안…표결 뒤집는 의원들
실제로 김영란법 개정안에 공동 서명한 20명의 의원 중 김영란법 표결 때 반대한 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신성범 경대수 양창영 박윤옥 김정록 이주영 이철우 김기선 이종진 황인자 이명수 안효대 이종배(이상 새누리당) 황주홍(새정치민주연합) 유승우(무소속) 의원 등 15명은 찬성, 김종태 정병국 홍문표 의원은 불참, 최봉홍 의원(이상 새누리당)은 기권을 했다. 안상수 새누리당 의원은 올해 4월 재보선으로 당선돼 표결 때 국회에 없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표결을 뒤엎는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법안의 취지를 넘어선 정부 시행령 등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를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여당 의원들이 재의결에 아예 불참함으로써 사실상 폐기수순을 밟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은 원래 표결 때 전체 211명의 의원이 찬성했고, 이중 새누리당 의원이 95명이었다.

지난해 ‘국민 호갱(호구 고객)법’이라는 비판이 빗발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개정안도 본회의 표결 때는 반대 의원이 1명도 없었지만 통과 뒤 여론의 비판이 비등하자 개정안이 잇따라 제출되기도 했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표결을 뒤집는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당론에 따르는 투표 양태 △청와대 등 권력이나 여론, 유권자 눈치보기 △법안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소신 부족 등이 꼽힌다. 국회 관계자는 “김영란법 개정안에 서명한 의원들 가운데 김영란법 논의 과정에서 제대로 법안을 고민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면서 “의원들이 제대로된 반성도 없이 자신의 표결을 뒤집어서는 정책의 최종 관문인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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