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통근버스엔 비정규직만이…韓 노동시장 자화상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15.08.11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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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노동개혁, 미래와의 상생 ②:노동시장 이중구조(1)]핵심은 '이중구조' 해소

 31일 오후 6시께 경남 거제시 사등면 사곡리의 한 도로를 달리던 통근버스가 굴다리에서 5m 아래로 추락했다. 당시 통근버스에는 거제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경남소방본부 제공) 2015.7.3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31일 오후 6시께 경남 거제시 사등면 사곡리의 한 도로를 달리던 통근버스가 굴다리에서 5m 아래로 추락했다. 당시 통근버스에는 거제 대우조선해양 근로자들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경남소방본부 제공) 2015.7.3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노동유연성' '임금피크' 강조, 노동계 공감 못 얻어
-기업-가계 소득 선순환 진정성 인식시켜야
-'직무기반 임금체계'등 비정규직 배려 중요

지난달 31일 퇴근길, 거제시 한 국도에서 추락·전복된 대우조선해양 통근버스 탑승자는 2명을 제외한 59명이 비정규직 사내하청 근로자였다. 사고로 숨진 2명과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인력 대부분도 비정규직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마침 정규직 노동자 상당수는 2주간의 휴가를 받고 출근을 안한 경우가 많아 큰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



박점규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 대변인은 "연봉 7000만원을 받는 정규직이 휴가를 떠난 사이, 이들 급여의 절반만 받는 비정규직은 휴가없이 일을 하다가 변을 당했다"며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정부와 청와대는 '정규직 대 비정규직', '원청 대 하청', '대기업 대 중소기업'으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강한 의욕을 내비쳤지만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총을 포함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범위확대 등에 기본적인 합의를 도출해낼 때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해고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변경에 노동계가 반발하면서 기본 합의도 무용지물이 됐다.

노사정이 해법을 찾지 못하는 사이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더욱 공고해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 시간당 임금인상률은 5.1% 인상된 반면 비정규직은1.8% 상승하는데 그쳐 격차를 넓혔다.

특히 비정규직 중 단기간근로자를 제외한 파견, 용역, 기간제, 일일근로자의 임금이 모두 낮아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늘리는 데 영향을 끼쳤다.


대기업들은 '하청기업'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노동비용을 줄여나갔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공시'에 따르면 10대 대기업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비율은 30.7%를 기록, 전년대비 1%포인트 늘어났다. 전체기업이 평균 0.1%포인트 오른 것에 비하면 10배나 많은 수치다.

하청 노동자는 직접고용에 비해 52%의 임금만을 지급한다. 임금 부담을 낮추려는 기업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인 셈이다. 하청은 재하청, 재재하청으로 이어져 원·하청의 불평등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롯데호텔의 청소노동자는 정규직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내쫓기고, 지금은 빈 자리를 아웃소싱 업체가 대신하고 있다"며 "예전에 호텔 룸메이드에게 100만원을 줬다면 지금은 45만~50만원만 주고 고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인식은 여전히 현실과 거리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대국민 담화에서 고용유연성을 앞세워 일반해고와 임금피크제 추진을 강조했다. 손쉬운 해고와 기득권 양보를 통해 미래세대에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선순위'로 내세운 셈인데 노동계가 반발하는 지점도 이곳이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노동계는 이미 임금피크제를 자율적으로 시행 중이다. 반면 기재부나 노동부는 이런 고통분담을 한 적이 있느냐"며 "제도가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킨다고 주장하려면 공무원은 연금제나 휴무만 챙길 게 아니라 이런 제도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극대의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경기 상황에 따라 인력구성을 재편하는 것이 잘못된 얘기는 아니지만, 이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 입맛에 맞게 쓰고 해고하는 것이 우리 기업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는 의문스럽다는 평가도 나온다. 때문에 정부와 대기업이 노동자들을 향해 보다 적극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기업 소득 증대가 가계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의 만들겠다는 의도의 진정성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며 "먼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거나 최저임금인상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한지붕 이중구조'부터 해결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의 시작이라고 꼬집었다.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동일한 근무를 하는 직원이 원청과 하청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 임금격차가 과도하게 나서는 안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유럽은 동일 노동에 따른 임금격차를 20% 이내로 노사단협이나 법률에서 정하고 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데 있는게 아니라 직무에 기반한 임금체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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