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울리는' 소멸시효 완성채권 추심 못한다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15.08.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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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금융사가 소멸시효 완성채권 매각 못하게 행정지도…관련 내용 법률 반영도 추진

#A씨는 지난 2003년 B은행으로부터 채소가게 운영자금 1000만원을 신용대출 받았다. 하지만 장사가 안돼 대출금이 연체됐고, 이후 이혼, 이사 등으로 은행의 채무상환독촉장 등을 받지 못한 채 채무사실을 잊고 지냈다. 8년 후인 2011년 B은행에서 대출채권을 매입한 C대부업체가 "지금 1만원만 송금하면 연체이자 1500만원을 면제해 주고, 원금도 절반을 깍아주겠다"고 A씨를 회유했다. A씨는 즉시 1만원을 송금하고, 3개월 이내에 500만원을 상환하겠다는 채무이행각서도 써줬다. 하지만 A씨의 대출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돼 상환하지 않아도 되는 빚이었다.

금융회사들이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된 채권을 추심하거나 대부업체 등에 매각하는 행위를 자제하도록 금융당국이 행정지도에 나설 예정이다. 또 소액채권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추심을 제한하는 내용을 관련 법률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금융감독원은 9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소멸시효 완성채권 추심에 따른 서민피해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금융사의 대출채권은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때부터 5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변제의무가 사라진다. 금융사들은 통상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소각처리 하지만 일부 금융사들은 대부업체 등에 매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2010년 이후 5년간 162개 금융회사가 4122억원(미상환원금)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120억원에 매각했다.



문제는 A씨의 사례처럼 소멸시효가 완성돼도 법원의 지급명령이 있거나 채무자 스스로 변제하는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다시 부활한다는 점이다. 대부업체들은 이를 악용해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싸게 매입한 후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채무자로부터 소액변제를 받아내는 등의 방법으로 시효를 부활시켜 채권을 추심하고 있다.

특히 조금이라도 채무를 상환하면 별도의 법적절차 없이 시효가 부활한다는 점을 노리고 "1만원만 입금하면 원금의 50%를 감면해 주겠다"는 식으로 채무자들을 회유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소액채권 채무자의 대다수가 서민·취약계층이고, 이들이 소멸시효 완성여부나 대응방법을 알지 못해 대부업체의 채권추심에 시달리면서 갚지 않아도 될 채무를 지고 있다고 보고 이를 막기 위해 행정지도에 나서기로 했다.


또 금융사가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양도하기 위해 채무자에게 통지하는 '채권양도통지서'상에 시효완성 사실을 명시토록 하고, '채권양도 통지업무 표준(안)'을 마련해 9월 중 시행할 예정이다. 아울러 채권자가 채권보전을 위해 법원에 제출하는 '지급명령신청서'에 시효완성 여부를 명시하도록 소관부처에 건의키로 했다.

이밖에 서민들이 소멸시효 완성여부 등을 몰라 피해를 보지 않도록 대응방법을 적극 안내하고,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에 대해 상환통지를 받은 경우 금감원 및 전국 지자체에 설치된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에 상담토록 홍보할 계획이다.

이상구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번 조치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이 갚지 않아도 될 금융사 채무로 인해 채권추심에 시달리거나 채무상환 부담을 지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며 "금융사들도 소멸시효 완성채권 매각이 제한되면 일단 대출하고 보자는 식의 무분별한 대출관행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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