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글교육, 너를 어쩌면 좋니?

머니투데이 송정렬 부장 2015.07.29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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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년에 기껏 두 반밖에 없는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장사하느라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아홉 살 터울 누나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다. 부모님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새 옷을 입은 여덟 살 꼬마들의 표정은 모두 씩씩했다. '형이나 누나처럼 이제 나도 학교에 다닌다'는 뿌듯함이 묻어났다. 그 마음을 대변하듯 가슴 한 편엔 콧물을 닦을 커다란 손수건이 마치 계급장처럼 달려있었다. 벌써 35년 전의 기억이다.

당시 정식 교육과정의 출발점은 한글이었다. 선생님을 따라 "기역" "니은"을 큰 소리로 외치며 한글 자음과 모음을 외운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받아쓰기를 틀려 누나에게 꿀밤을 맞고 왠지 모를 억울함에 울던 기억도 잊혀지지 않는다.



얼마 전 아내가 불쑥 다섯 살 둘째아이의 한글교육을 '당분간' 끊어야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놀기 좋아하는 둘째가 한글을 배우는데 그다지 흥미가 없는데다 '교육'보다 '수익'에만 관심 있어 보이는 해당 사교육업체의 운영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둘째는 지난해 말부터 형을 따라 일 주일에 한 차례 집을 방문하는 ○○교육 선생님에게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끔 일찍 퇴근한 날 둘째가 선생님과 마주앉아 한글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이 떠올라 웃곤 했다. 아직 동화책에서 그나마 받침 없는 '오' '리' 등 몇 개 글자만 아는 둘째의 한글 학습 수준이 적잖이 걱정됐다. 더구나 여섯 살이 되기 전부터 책을 술술 읽은 첫째에 비해 둘째는 영 느려 보였다. 하지만 아내의 뜻을 순순히 따랐다. 사실 아이들 교육문제에 발언권을 가질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원죄'가 있는데다 나름 '학교'라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한글이야 유치원이나 아니면 학교에서 배우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생각이었다. 아내의 말에서 주목할 단어는 바로 '당분간'이었다. 둘째는 여섯 살부터 다시 사교육을 통해 한글을 배워야 한다고 한다. 유치원,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도 제대로 한글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사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아내는 친절히 일러주었다.

"아니 선행학습에 대한 부모들의 욕심이 아니라 학교에서 제대로 안 가르쳐 사교육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우리 한글을."

실제로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따르면 현 교육과정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 배정된 한글해득을 위한 시간은 27시간이다. 그나마 이 시간도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비하면 2배가량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정작 한글해득에 6개월은 필요한데 달랑 한 달로 뚝딱 마무리하는 셈이며, 이마저도 교실에선 건너뛰기 일쑤라고 한다. 우리나라 영유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글 사교육을 받거나 학습지를 이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되레 공교육이 한글 사교육을 권하는 셈이다.

시대나 세상의 변화에 따라 교육과정도 그에 맞게 바뀔 수밖에 없다. 하물며 2018년부터는 초·중·고생들이 필수로 소프트웨어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고, 사교육이 담당할 것과 공교육이 맡아야 할 것이 있다. 차라리 소프트웨어교육은 포기할지언정 한글만은 붙잡아야 하는 것이 공교육의 기능과 역할이 아닐지. 비록 우리 아이들이 시대에 뒤처지고, 이 땅에서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인물이 나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가장 위대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며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 교육조차 외면하고 포기한 공교육의 현실은 너무 딱하고 참담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얼마나 더 공교육의 현실에 실망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song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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