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상고법원은 역주행이다

머니투데이 이재화 대한변호사협회 상고심제도개선위원 2015.07.23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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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화 변호사이재화 변호사


대법원이 상고법원을 도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법원마다 '원칙과 기준은 대법원에서, 권리구제는 상고법원에서'라는 플래카드가 나붙고, 국회의원을 상대로 입법로비가 전개되고 있다. 상고사건 수가 너무 많아 제대로 사건을 심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상고사건 수는 연간 3만6000건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3배 정도 늘었다. 현재의 대법관 수로는 이 많은 사건을 제대로 심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상고심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문제는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이다.

사법제도를 개선함에 있어 두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동시에 헌법에 부합해야 한다. 과연 상고법원안은 이 두 가지 원칙에 부합할까?



대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의 첫 번째 불만은 제대로 사건을 심리하지 않으면서 늑장 재판을 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대법관 1인당 처리해야 할 사건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간명하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된다.

그런데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에 반대한다. 대신 상고법원을 만들어 상고법원에 대부분의 상고사건을 맡기고 대법관들은 상고사건 중 일부 중요한 사건만 골라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법관 수를 늘리면 대법관의 권위가 떨어지니 새로 상고법원을 만들어 '하청 재판'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다.



국민이 대법원에 상고하는 것은 하급심의 잘못된 판결에 대해 최고법관인 대법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이지 대법관이 아닌 법관으로부터 다시 판단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추구하는 상고법원안은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을 대법관이 아닌 상고법원 판사가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대법관의 권위만 내세운 '민주주의에 대한 역주행'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의 두 번째 불만은 대법원 판결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는 대법관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투영된다. 50대 - 서울대 - 남성 - 고위 법관이라는 획일적인 대법관 구성으로는 사회의 변화를 수용하고 다양한 가치를 반영한 가치정립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법원이 내놓은 상고법원안에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전혀 없다. 현재와 같은 획일적인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이 사회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기준을 정립할 수는 없음은 자명하다.

상고법원안은 과연 헌법에 부합하는가? 헌법은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한다"고 규정한다. 최종심은 '대법관으로 구성된 최고법인인 대법원'임을 선언한 것이다.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상고법원은 헌법상 '각급법원'에 불과하다. 헌법상 '최고법원'이 아닌 '각급법원'에 지나지 않는 상고법원에게 최종심을 맡기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법원이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이 대법원 구성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헌법은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상고법원안에 의하면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판사를 임명하게 된다. 상고법원 판사의 구성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와 대통령이 관여할 수 없다. 민주적 정당성 측면에서도 대법관과 상고법원 판사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된 법관으로 구성되는 상고법원에게 최종심인 상고심을 맡기는 상고법원안은 헌법의 국민주권주의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법원이 추진하고 있는 상고법안은 국민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상고심 개선방안이고, 그 내용 또한 위헌적이다. 대법관의 과도한 사건 부담을 해소하면서도 국민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대법관을 증원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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