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수', 기로에 서다…'유승민 파동', 노선투쟁 서막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2015.07.1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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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기로에 선 보수 여당①]당청 충돌 기저에 개혁 보수 vs 기존 보수 구도

 원내대표 사퇴 파문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급상승 중인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구 최대현안 k2 공군기지 이전 사업과 관련한 간담회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8-9일 양일간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 결과, 지난달 조사 대비 13.8%포인트 급등한 19.2%로 김무성 대표에 0.4%포인트 앞서며 조사 이래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5.7.10/뉴스1  원내대표 사퇴 파문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급상승 중인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구 최대현안 k2 공군기지 이전 사업과 관련한 간담회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8-9일 양일간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조사 결과, 지난달 조사 대비 13.8%포인트 급등한 19.2%로 김무성 대표에 0.4%포인트 앞서며 조사 이래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2015.7.10/뉴스1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합니다"

지난 4월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대표연설이 진행된 국회 본회의장. 기존 보수 여당의 정책 기조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선언에 야당 의원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보수 여당이 나아갈 길을 제시했단 호평도 나왔지만 당내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너무 나갔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유 원내대표는 이로부터 3개월여만에 사퇴했다. 사퇴의 직접적인 계기는 삼권분립 논란이 불거진 국회법 개정안이었지만 유 전 원내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충돌은 이미 이날 연설을 기점으로 점화됐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유 전 원내대표가 주창한 개혁 노선과 박 대통령의 기존 보수 정책 사이의 갈등이 '유승민 파동'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유 전 원내대표와 박 대통령의 충돌을 개혁 보수와 기존 보수와의 노선 투쟁으로 보는 시각은 우선 유 전 원내대표가 취임 후 정책 방향을 놓고 수차례 충돌해왔던 것에 근거한다. 유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법인세 인상도 성역이 아니다"며 현 정부 기조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각종 인터뷰를 통해서 "경제와 복지, 교육, 노동 등은 진보적으로 가야한다"고 강조했고, 기존 보수의 관점에서 부담을 가질 수 있는 '협동조합' 이슈도 선도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도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정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유 전 원내대표가 지향하는 정책 방향이 집대성된 지난 4월의 교섭단체대표연설이 결정타가 됐다. 유 전 원내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박근혜 정부의 공약가계부와 '증세없는 복지'를 더이상 지킬 수 없다고 시인하고,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고 복지를 확대하는 '中부담-中복지'를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정부 정책을 정면 비판하고 정책 전환 필요성을 설파하는 상황을 임기 절반 이상을 남긴 대통령 입장에서는 용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2015.7.13/뉴스1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2015.7.13/뉴스1
특히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9월 정기국회의 예산안와 세제개편안 심의 등 중요한 정책이벤트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이 9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총선 공약도 다시 짜야 한다. 정부의 주요 정책들이 국회의 입법 과정을 통해 종결된다는 점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생각이 다를 경우 현재의 국정 기조를 유지해나가기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차에 국회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유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뜻을 무시하고 협상을 진행했다고 판단되자, 무리해서라도 교체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유 전 원내대표가 중도 사퇴하면서 여당 내 개혁 보수의 움직임은 당분간 움츠러들 가능성이 높다. 당장 새 원내지도부가 개혁 성향이 강하지 않은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 체제로 결정됐다. '재정건전성'과 '친기업 정책'을 강조하는 김무성 대표도 정책적으로는 개혁 보수 보다는 기존 보수에 가깝다. 설사 정책 변화를 꾀하려는 의지가 있더라도 당청 갈등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리한 시도를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개혁 보수로의 노선 전환은 다시 시도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내년 총선의 프레임이 양극화 해소 등 정책의 '좌클릭'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새누리당 지도부도 기존 정책 노선만을 고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경제민주화'라는 진보성향의 개혁 아젠다를 수용한 효과가 적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야 모두 총선의 승부처라고 보는 수도권 유권자들일수록 정책 기조에 민감하다. 유 전 원내대표가 사퇴의 변을 통해 '제가 꿈꾸는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의 길로 가겠다'고 재차 강조한 것도 다시 시작될 노선 투쟁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경제 정책에서 보수 노선을 표방했던 이명박정부에 비해 박근혜정부는 이념 지향적, 안보 중심형 보수로서 차별화가 됐었다"면서 "다음 대선에서도 주류가 표방하는 보수 노선과 새로운 개혁보수의 가치를 놓고 논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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