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총에서의 투표권 행사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과 유사하다. 노벨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의 최후통첩 게임은 분배할 재화를 두고, 한 사람이 분배 비율을 정할 권리를, 다른 쪽은 그 분배 비율을 수용할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최후통첩게임의 특징은 제안을 수용하면 양측에게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양측 모두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발로 차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합병비율에 불만을 품은 삼성물산 일부 주주들이 이번 합병을 거부해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합병 무산 후 엘리엇이 지분을 더 사들이는 형태로 단기적으로 주가가 상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동력 약화로 삼성물산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소액주주들은 합병 무산 후 주가가 급락하거나, 엘리엇이 주가를 떠받힐 때 손실을 최소화하고 떠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얘기도 증권가에서 돈다. 심지어 합병에 반대의견을 내놓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 조차 합병 무산시 주가가 23% 급락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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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최후통첩 게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상대방도 어떤 이익도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징벌적 손해'라고 한다.
세계적인 철학자 존 롤즈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이런 징벌적 손해를 감수하는 이유는 '경쟁적 시기심'에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자신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상대방에 대한 '기분 나쁨(경쟁적 시기심)'을 만회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상대에게는 더 큰 손실을 주는 형태다.
이는 상대방이 얼마를 가져가든 무관심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충실해 자신에게 이익이면, 이를 선택하는 이성적 판단과는 배치되는 결정이다. 나보다 더 가져가는 상대에 대한 경쟁적 시기심이 '징벌적 손해'를 감수하는 감성적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의 이런 감정적 결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의 결정이 이런 감성적 잣대로 흘러가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합병무산 충격에 따른 주가하락도 명약관화하다. 미래성장동력이 없는 기업의 주가가 얼마나 오래 갈까. 국민연금이 반대해 합병이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연금은 매수청구가격을 밑도는 합병에 반대했지만, 그 결과는 매수청구가격을 더 밑도는 주가 흐름으로 합병을 찬성했을 때보다 더 큰 국민의 손실을 가져왔다.
단기적 이익만을 보는 헤지펀드나 이들에게 동조하는 의결권 자문기구의 근시안적 선택에 목을 맬 것인가, 기업의 손실에 가장 민감해 하는 경영진의 깊은 숙고에 동조할 것인가. 국민연금의 올바른 선택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