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삼성물산 합병' 국민연금의 바른 선택은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부장 2015.07.08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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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오동희의 思見]'삼성물산 합병' 국민연금의 바른 선택은


오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위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삼성물산과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측의 표대결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드를 쥐게 됐다. 국민연금이 손을 들어주는 쪽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이다.

이번 주총에서의 투표권 행사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과 유사하다. 노벨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의 최후통첩 게임은 분배할 재화를 두고, 한 사람이 분배 비율을 정할 권리를, 다른 쪽은 그 분배 비율을 수용할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



삼성물산 경영진이 합병비율을 제안했고, 국민연금 등 주주들이 이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최후통첩게임의 특징은 제안을 수용하면 양측에게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지만,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양측 모두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발로 차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이번 합병은 침체된 건설경기와 저수익률의 상사 부문의 성장 한계를 겪고 있는 삼성물산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통해 시너지를 내자는 목적을 갖고 있다. 거기엔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하자는 목적도 함께 있다.

합병비율에 불만을 품은 삼성물산 일부 주주들이 이번 합병을 거부해 합병이 무산되면 삼성물산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합병 무산 후 엘리엇이 지분을 더 사들이는 형태로 단기적으로 주가가 상승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동력 약화로 삼성물산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소액주주들은 합병 무산 후 주가가 급락하거나, 엘리엇이 주가를 떠받힐 때 손실을 최소화하고 떠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얘기도 증권가에서 돈다. 심지어 합병에 반대의견을 내놓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 조차 합병 무산시 주가가 23% 급락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을 정도다.


이런 최후통첩 게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상대방도 어떤 이익도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징벌적 손해'라고 한다.

세계적인 철학자 존 롤즈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서 이런 징벌적 손해를 감수하는 이유는 '경쟁적 시기심'에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자신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상대방에 대한 '기분 나쁨(경쟁적 시기심)'을 만회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상대에게는 더 큰 손실을 주는 형태다.

이는 상대방이 얼마를 가져가든 무관심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충실해 자신에게 이익이면, 이를 선택하는 이성적 판단과는 배치되는 결정이다. 나보다 더 가져가는 상대에 대한 경쟁적 시기심이 '징벌적 손해'를 감수하는 감성적 결정을 내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의 이런 감정적 결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의 결정이 이런 감성적 잣대로 흘러가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합병무산 충격에 따른 주가하락도 명약관화하다. 미래성장동력이 없는 기업의 주가가 얼마나 오래 갈까. 국민연금이 반대해 합병이 무산된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흐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연금은 매수청구가격을 밑도는 합병에 반대했지만, 그 결과는 매수청구가격을 더 밑도는 주가 흐름으로 합병을 찬성했을 때보다 더 큰 국민의 손실을 가져왔다.

단기적 이익만을 보는 헤지펀드나 이들에게 동조하는 의결권 자문기구의 근시안적 선택에 목을 맬 것인가, 기업의 손실에 가장 민감해 하는 경영진의 깊은 숙고에 동조할 것인가. 국민연금의 올바른 선택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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