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아버지 보고 눈물"…폐 소방호스로 창업 나선 청년

머니투데이 이해진 기자 2015.07.0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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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스타]<32>폐 소방호스로 에코백 만드는 '파이어마커스'

편집자주 우후죽순 생겨나는 스타트업 사이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주목받는 '벤처스타'들을 소개합니다. 에이스로 활약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미래의 스타 벤처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왼쪽부터 파이어마커스의 김주혜 디자이너, 이규동 대표, 박지원 디자이너/사진=이해진 기자 왼쪽부터 파이어마커스의 김주혜 디자이너, 이규동 대표, 박지원 디자이너/사진=이해진 기자


"폐 호스로 만든 에코백으로 전국 소방관 3만5000명의 장비 노후화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파이어마커스는 폐 소방 호스를 재료로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 또는 활용도를 더해 그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가방을 만드는 소셜 벤처다. 버려진 소방호스를 천으로 활용해 에코백 등 패션용품을 만들어 온라인 쇼핑몰(http://www.firemarkers.co.kr)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금의 일부를 소방관들의 소방장비 구입에 지원한다.

'소방의 흔적'이라는 이름처럼 파이어마커스 에코백에는 화재 진압 과정에서 생긴 검은 그을음이 그대로 남아 있다. 호스에 생긴 그을음을 제거하는 대신 그대로 살려내는 방식으로 디자인 했기 때문이다. 이규동 파이어마커스 대표(28)는 "소방관들의 희생정신을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그을음을 그대로 디자인으로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원래 소방관인 아버지의 뒤를 따라 소방관을 꿈꿨다. 대학에서 소방학을 전공한 그는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의 낡은 소방장갑을 발견한 이 대표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식된 입장에서는 '이렇게 희생하면서까지, 다치면서까지 이 일을 하셔야 하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며 "아버지를 비롯한 국내 소방관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던 박용학 씨(28) 박지원 씨(26)와 소방관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던 이 대표는 우연히 폐 소방호스로 제품을 만들어 그 판매 수익금의 일부로 소방관들을 돕는 영국 기업 '엘비스 앤 크레세'(Elvis & Kresse)를 접하게 됐다. 단순한 일회성 기부가 아니라 꾸준히 소방관들을 돕고 일반 시민들도 소방관의 희생정신을 기릴 수 있다는 취지에 공감한 이 대표는 국내에도 소방 폐 호스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우선 폐 호스를 구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소방관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였지만 '시민을 지키는 소방관을 왜 돕느냐'는 눈총도 받았다. 결국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발품을 팔며 각 지역의 소방서를 직접 찾아가 버려진 소방호스를 수거했다.

일반 천이 아닌 소방 호스로 가방을 제작하는 일 또한 쉽지 않았다. 특히 팀 내 디자인 전문가가 없는 점도 문제였다. 그나마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박 씨가 디자인을 맡아 재봉틀을 처음 잡았다. 박 디자이너는 "호스를 세척하고 재단해 하나하나 이어붙여 천으로 만드는 공정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데 재질이 일반 천과 달라 재봉을 해 가방으로 제작해내는 일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파이어마커스는 여럽게 제작한 에코백 등 샘플을 가지고 여러 공모전에 출전해 호평을 받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어 지난 5월 약 한달 동안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 총 136명으로부터 270만원 가량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선주문된 에코백 물량은 이 달 안에 제작돼 배송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목표액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파이어카머스에 공감하고 응원을 보내줬다"고 말했다.


하반기에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김주혜(24) 디자이너를 영입, 소방 호스를 이용한 기존 가방 제품 이외에 '밀리터리 룩'(육군 군복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패션 스타일)처럼 소방 관련 이미지를 차용한 여러 '소방룩' 디자인 제품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제품 판매 이외에 소방관들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전시회도 기획하고 있다. '평범한 히어로'를 주제로 한 이 전시회는 7월과 8월 중 1·2차로 나뉘어 서울특별시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에서 무료로 열린다.

이 대표는 "일반적으로 소방관의 이미지는 '영웅'이다. 그래서 소방관들은 '당연히 불 속에 뛰어 들어가야 하고, 당연히 목숨을 걸고 시민의 생명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때로는 소방관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시민들의 욕설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하지만 그들도 누군가의 평범한 '아빠'이자 '엄마'이고 '형'이자 '삼촌'이다. 이에 '평범한 히어로, 소방관'을 주제로 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소방관에 대한 '인식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한 영국의 엘비스 앤 크레세와 상품을 교차 수입해 판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 소비자들은 엘비스 앤 크레세 제품을 구입할 수 있고 영국 소비자들도 파이어카머스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파이어마커스는 폐 소방호스를 이용한 업사이클링 제품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상승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소방관 1명 당 평균 시민 1300명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파이어마커스가 전국 3만5000명의 소방관들의 노후화된 장비 문제 해결에 작게나마 기여해 소방관들을 지키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지금은 폐 소방호스 가방으로 시작했지만 파이어마커스를 국내 업사이클링 대표 브래드, 소방룩의 대표적 패션 브랜드로 성장 시키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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