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靑 중심' 권력구조 재정립 승부수(재종합)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2015.06.25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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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와 이에 따른 후폭풍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강도가 더욱 셌다. 정치권에 대한 박 대통령의 불신과 이를 비판하는 수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참모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잔여 임기 2년 반여를 걸고 여야 정치권과 정면충돌도 불사한다며 승부수를 띄웠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청와대 위주로 권력구도를 재편하거나 그게 불가능할 경우 아예 남은 임기 선을 긋고 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해외건설 50주년 및 7천억불 수주 달성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했다. 2015.6.25/뉴스1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해외건설 50주년 및 7천억불 수주 달성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을 행사했다. 2015.6.25/뉴스1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 16분 중 10분 이상을 할애해 민생 및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은 처리해주지 않고 위헌요소가 내포된 국회법 개정안을 졸속 통과시키며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저의’ ‘비통’ ‘가짜 민생법안’ ‘구태 배신정치’ 등의 격한 단어를 써가며 거부권 행사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초강수를 둔 것은 국회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는 명분을 확신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정부의 행정을 국회가 일일이 간섭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헌법 수호 의무를 지닌 대통령의 입장에서 어떻게 위헌성이 있는 법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나아가 이를 ‘여야가 야합’을 통해 국민적 신뢰를 저버린 “배신의 정치”의 결과물로 인식했다. “개정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과정도 없이, 그것도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공무원연금법 처리와 연계해 하룻밤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고 말했다.



특히 “위헌성 문제가 커지자 법안을 수정하며 ‘요구’를 ‘요청’으로 한 단어만 바꿨는데 ‘요청’과 ‘요구’는 사실 국회법 등에서 같은 내용으로 혼용해 사용된다”고 법리적 해석을 덧붙였다. 이어 “또한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부분을 ‘검토하여 처리 결과를 보고하여야 한다’로 완화하는 것은 바꾸지도 않았고 야당에서도 여전히 강제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이것은 다른 의도로 보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여야가 합의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며 중재안을 낸 정 의장을 포함한 여야 모두를 싸잡아 비난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은 당리당략으로 묶어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은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언제나 정치권은 정부의 책임만 묻고 있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이 같은 발언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국정혼란의 근본 원인이 민생을 외면한 구태정치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안이 ‘정쟁 대 경제 살리기’라는 점을 부각하며 국민 여론에 호소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각종 법안이 국회에 장기 계류하면서 정부는 시행령 등을 통해 정책을 간접적으로 추진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런 처지에 국회법 개정안까지 통과시키려는 것은 남은 임기에 손발을 묶어버리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권 비판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공개 비난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정치는 국민들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대변자이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여당 원내사령탑으로 주요 국정과제 입법화에 힘쓰기보다 주요 현안마다 엇박자를 내며 자기정치를 하려한다는 투였다. 거부권 행사도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염두해둔 포석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내홍 차단을 위해 재신임을 택했고, 유 원내대표는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겠다"며 친박계의 사퇴요구를 일축하면서도 "청와대 식구들과 함께 (당청)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사퇴 거부에 대한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대처가 향후 당청 관계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잔여임기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야당과의 관계 복원도 박 대통령이 해결해야할 숙제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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