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의 잠금해제]'신경숙 표절' 논란과 침묵하는 '적들의 사회'

머니투데이 신혜선 정보미디어과학부&문화부 겸임부장 2015.06.22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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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문단 권력'에서 언론은 자유롭지 않다

[신혜선의 잠금해제]'신경숙 표절' 논란과 침묵하는 '적들의 사회'


# 소설가로 등단하고 싶어서 문단 권력자들에게 성 상납을 하는 문화부 여기자가 상상 되는가. '신춘문예 등단 작가'라는 신분을 갖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그녀는 유명 작가(심사위원)에게 먼저 접근한다. 그 방법은 권력자들에게 공유될 수밖에 없는 희롱거리니, 그녀는 거꾸로 성 상납 요구에 응해야하는 처지가 된다. 그녀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거래한다. 그 결과 그녀는 '국내 최고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소설가이자 기자'가 됐다.

# 평론가가 되고 싶은 한 남자 기자가 있다. 그는 국내 최고 언론사에 몸담은 문학전문 기자다. 그는 문단의 최고 권력자와 결탁해 언론을 좌우한다. 그 권력자가 하루속히 자기에게 평론가 지위를 부여하기만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 권력자는 유력 매체를 활용하는 끈으로만 그를 이용한다. 그도 이를 알지만, 덫에 걸려있다. 그는 '공동 작업팀' 탈퇴를 선언한 후 의문의 사고로 죽은 작가의 미발표 원고를 훔치라는 명령을 받는다. 훔친 원고가 자신의 명예를 키워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그 범죄를 행한다. 하지만, 그 원고는 다른 이의 몫. 그는 권력자의 '하수인'을 벗어나지 못한다.




[신혜선의 잠금해제]'신경숙 표절' 논란과 침묵하는 '적들의 사회'
읽는 내내 진흙탕에 빠진 느낌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이 이야기는 부패한 문단 그리고 먹이사슬 연결고리인 언론계를 한꺼번에 고발하는 장편소설 ‘적들의 사회(이진우 시인·소설가/1999/서적포)’다.

21년 전 나온 이 소설은 국내 최고 문학지가 비밀조직을 운영하며 대필과 수정 작업을 통해 특정인의 소설을 만들어내는 범죄, '창작비리'를 까발리는 내용이다.



독자나 그 '리그에 끼지 못한 기자들과 작가들'은 상상할 수 없는 얘기다. 기껏해야 “신춘문예 당선되려면 이렇게 저렇게 좀 고쳐서 발표하는 게 어떻겠는가”라는 심사위원의 제안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거나 “어느 평론가 교수한테 찍히면 끝”이라거나 “어떤 문학지를 통해 등단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풍문 같은 말 정도가 문단의 부패 아니었나.

하지만 저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참아내기는 거북하겠지만 더러운 군상들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편이 더 낫겠다”는 말로 이 소설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대신 한다.

‘신경숙 표절 논란’이 일면서 엉뚱하게 2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먼저 떠오른 이유는 문단 비리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는 언론(기자)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잊을 수 없어서다.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지난 19일, 한 포털에서 '신경숙 표절'을 검색했다. 그날 어떤 연구원의 원장이 검찰에 신경숙씨를 고발한 기사까지, 그날 하루 총 1336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기사 개수만 보면 '십자포화'다.

하지만 문화 지면의 역사가 깊다고 하는 국내 최고 매체를 찾아보니 정 반대였다. ‘글발’ 되고 출판계와 문단 내 인맥을 자랑하며 형 아우로 지낸다는 문학 전문 기자들의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주로 ‘XXX닷컴’이나 ‘디지털뉴스팀’이 나설 뿐이다.

당연히 해당 문학지 '소속'의 편집위원(작가나 평론가)들의 침묵을 꾸짖는 기사나 표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의 기사를 쓸 리 없다. 주말을 지나며 '문학의 자정능력에 맡기자'는 식의 입장이 나오는 분위기다. 전문 평론가나 문학가의 기고를 받아 비판을 하는 건 영향력이 그보다 못한 매체들의 몫이다.

“책이 잘 팔린다 해도 지속적으로 평단이나 언론에서 지원사격을 받지 못하면 갈수록 지명도가 떨어지는 게 통례였다.” “게으른 문화부 기자들은 그의 기사를 베끼거나 그가 짚고 지나간 기사를 재탕해 먹었고…(중략) 어쨌거나 최 선생은 그에게 든든한 백이었다. 등단을 빼고도 이용가치가 충분했으므로 최 선생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소설 속 기자의 단면은 한심하고 욕지기가 치민다. 스스로 군림하는 듯하지만, 실은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는 처지일 뿐이다. 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기자조차, 유력 문학지를 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며 절망하며 '또 다른 기회'를 엿볼 따름이다.

지금 표절 사건에 대처하는 거대 언론을 보니 '적들의 사회'에서 작가가 매몰차게 그린 언론과 기자의 모습이 아주 틀린 게 아닐 수 있다는 의심에 미친다. 문단과 언론은 진짜 결탁하지 않았을까.

최인자 문학평론가는 ‘적들의 사회’ 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적들의 사회’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글을 다루고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토록 세속적일 뿐만 아니라, 야비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알려주기 때문이 아니다. (중략) 글쓰기와 관련된 모든 현상이 허상, 또 하나의 그림자이며 조작된 꿈일 뿐이라는 허망한 깨달음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또한 조작된 허상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것은 권력이라는 실체 없는 존재뿐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인 것이다.“

최 평론가의 말에 동의하더라도 난 그 세속의 세계가 까발려지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물로서 문학이라는 ‘제품’은 유통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그 이전의 생산 과정의 '품질'(문학의 진정성)마저도 믿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절망은 "과연 누가 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서다. 문학의 순수성을 가장해 독자를 기만하는 문단을 단죄해야할 기자가 만일 소설처럼 그들의 리그에 포함되기 위해 안간힘 쓰고, 문단 권력이 주는 부스러기를 나눠먹으며 견고하게 그들의 울타리가 돼 있다면 말이다.

작년, '적들의 사회'를 처음 읽을 때 난 마치 내가 그들인 냥 부끄러웠다. '리그 축에도 못 끼면서' '신경숙 표절' 논란 앞에 그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다시 기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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