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때리면 그때 다시 오세요"…이 말에 무너지는 노인들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2015.06.17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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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는 노인③-끝]경찰·의사 등 적극적 학대 신고 나서야

편집자주 노인학대는 우리 사회의 가려진 폭력이다. 단순히 패륜 자식의 문제만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견고한 성(城)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학대 피해 노인들은 자식을 범죄자로 만들 수 없다며 신고를 거부하고 있고, 상황이 심각해 형사처벌이 진행되도 노인들은 결국 자식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 마련이다. 15일 '노인학대 인식의 날'을 맞아 노인학대 문제를 짚어본다.

16일 전국의 노인보호전문기관 등에 따르면 경찰의 협조부재는 노인학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뉴스116일 전국의 노인보호전문기관 등에 따르면 경찰의 협조부재는 노인학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뉴스1


"또 때리면 그때 다시 오세요"…이 말에 무너지는 노인들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살던 박철군씨(85·가명). 어느 날 화장실에 들어간 며느리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더러워 죽겠네!"

눈이 침침한 박씨가 소변을 변기 주변에 흘렸다는 이유였다. 불평을 들은 아들은 박씨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옆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자 놀란 이웃은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아들과 아버지를 둘 다 잡아서 차에 태워 경찰서로 데려갔다. 형사과 취조실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형사는 얻어맞아 볼이 부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처벌을 원하시나요?"

폭행으로 불구속 입건되더라도 어차피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함께 살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푹 숙인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또 때리면 다시 오세요" 형사는 두 사람을 시차를 두고 귀가 조치시켰다.



집에 돌아가보니 아들은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새벽까지 집 앞에서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던 늙은 아버지는 길거리로 나왔다. 지갑도, 휴대폰도 방에 놓고 나와 여관에 갈 수도 없었다. 결국 박씨는 노숙할 자리를 겨우 찾아 쪽잠에 들었다.

16일 전국의 노인보호전문기관 등에 따르면 경찰의 협조부재는 노인학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폭행 등 심각한 수준까지 간 노인학대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관이다.

그러나 현재 경찰은 노인학대 문제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반 상해로 다루고 있다. 노인학대 피해자들은 대부분 처벌을 포기하는데 그럴 경우 '사건종결' 처리를 해 버리니 가해자들은 법 무서운 줄 모르고 또 다시 학대를 반복하게 된다.


경찰은 아동학대·성폭력사건의 경우 여성·청소년과를 따로 두고 있으며 '원스탑(One-Stop) 보호·지원체계'를 구축해 사건 초기부터 심리전문가와 사회복지사 등을 참여시킨다.

그러나 노인학대 문제의 경우 경찰 내에 이를 전담하는 부서도 없을뿐더러 실무를 담당하는 경찰들 역시 노인보호전문기관 등 노인학대 문제를 담당하는 사회복지기관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노인보호전문기관 사례상담원은 "경찰서에 왔다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귀가하는 노인들을 기관에 연결만 해 줘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조사를 나갈 때 동행해주는 등 경찰이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노인만 전담하는 부서가 없는 것은 노인학대 사건 자체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이고 필요시에는 피해상담경찰관이 돕는다"고 해명했다. 피해상담경찰관은 전체 형사사건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해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사들 또한 가장 가까이서 노인학대를 발견할 수 있는 직종이지만 공조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의료인의 경우 노인복지법상 '노인학대 신고의무자'로 지정돼 있다. 노인들이 병원을 많이 다닌다는 점, 그리고 상해를 입었을 경우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노인학대 신고 건수의 1.2%(보건복지부, 2013년 기준)만이 의료인에 의해 이뤄졌다. 한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15% 가까이가 의료인에 의한 신고"라며 "특히 동네의원들의 경우 노인학대를 가장 최전선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공조가 잘 안 된다"고 아쉬워했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과태료 등 의무로 강요하기보다는 의료인 스스로 신고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실질참여를 높이는 방법일 것"이라며 "노인학대를 신고해도 위협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책, 그리고 적절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적극 참여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27개 노인보호전문기관에 근무하는 216명의 상담원이 650만 노인이 당하는 학대를 찾아내고,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담당 노인 수가 1인당 3만명 꼴인 셈이다. 경찰이나 의사의 공조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다.

이렇기 때문에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인인구 대비 실제 접수되는 건수는 2%가 채 안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노인 가운데 9.9%인 65만여명의 노인이 학대를 경험한 바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실제 학대 접수는 1만여건에 불과했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현재까지 노인학대 신고는 스스로 혹은 사회복지사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노인보호전문기관의 현재 인력으로는 신고의무자 전체에 대한 교육이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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