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협회 잇속에 힘 실어주는 최경환 부총리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15.06.01 08:05
글자크기

[S-레터]벤처협회의 코스닥 분리 주장, 속내 읽어야

벤처협회 잇속에 힘 실어주는 최경환 부총리


#개인투자자 A씨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물었다. "전에 투자했다던 그 코스닥 기업 요새 주가가 어때?" B씨가 대답했다. "말도 마. 5년을 투자했는데 아직 본전도 못 건졌어." A씨가 감탄하며 말했다. "우량주구만! 5년이나 코스닥시장에 붙어있다니!"

주식 경력이 오랜 개인투자자라면 이 우스갯소리가 남일 같지는 않으실 겁니다. 2000년대 IT버블의 대표주였던 새롬기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2010년 코스닥시장 최악의 우회상장으로 불리는 네오세미테크, 다이아몬드 채굴로 많은 투자자들을 현혹시켰던 CNK인터내셔널부터 최근 경남기업, 모뉴엘, 내츄럴엔도텍까지 코스닥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기업들은 수도 없습니다. 그나마 네오세미테크 사태를 계기로 거래소가 시장 정화에 총력을 가하면서 상장폐지 기업 수는 2010년부터 하락하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을 다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벤처협회에서 주장하고 있는 코스닥시장 분리 요구입니다. 벤처협회는 거래소 내의 코스닥시장본부를 분리해 코스피시장과 코스닥시장이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코스닥시장이 별개의 조직이 되면 상장기업 유치에 좀더 힘쓸 것이고 덩달아 거래도 활성화될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지난해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된 기업은 70여개, 올해는 100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코스닥지수도 활황세를 보이며 700포인트를 돌파하고 있는 이 때, 코스닥시장 분리 요구는 다소 뜬금없기조차 합니다. 벤처협회가 코스닥시장 분리를 강력히 원하는 이유는 뭘까요? 코스닥시장의 상장 문턱을 낮추라는 겁니다. 그래야 벤처캐피탈들이 증시를 통해 개인투자자들에게 지분을 넘기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 벤처협회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자본시장연구원이 개최한 '거래소시장 효율화를 위한 구조개혁 방향'에 참여해 "거래소가 상장을 막아 회사가 망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개인투자자들이 참여하는 주식시장에는 상장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들이 올라와 거래돼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거래소가 기업을 받아주지 않아 자신들이 손해를 보게 됐다는 억지논리입니다.

기본도 안 된 회사가 마구잡이로 상장된다면 그에 따른 개인투자자들의 손해는 누가 책임질까요. 벤처협회가 주장하는 상장기업 유치, 거래 활성화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개인투자자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은근슬쩍 벤처협회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금융당국도 문제입니다. 금융당국은 1~2개월 내에 결과를 발표하겠다며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벤처협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오는 2일에 국회에서 열리는 '거래소 지배구조 개편 발전적 제언' 행사 참석자만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주관, 금융위원회 후원으로 개최되는 이 행사는 벤처협회가 주된 패널로 참석합니다. 정작 당사자인 거래소 내의 코스닥시장본부 관련 인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거래소나 코스닥 상장기업들의 모임인 코스닥협회에 확인한 결과 참석 제안을 받은 적도 없다고 합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처럼 벤처협회에 편파적으로 보이는 행사에 참석해 축사까지 할 예정입니다.

한 코스닥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시장 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규 상장기업 숫자를 늘리는데만 관심이 있고 부실 기업이 상장돼 기존 상장사들이 입을 피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그동안 시장 클린화로 코스닥시장에 대한 불신이 크게 해소됐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코스닥 디스카운트'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