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삽시다" 대신 "이렇게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05.23 05:53
글자크기

'문화탁발'하는 곡인무영 스님…"양변을 여의는 삶이 부처의 길"

곡인무영 스님은 많은 말과 웃음을 통해 마주앉은 이를 행복하게 하는 묘한 재주를 지녔다. 그는 "활달한 성격 덕분에 모임 뒤풀이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direct119@<br>
곡인무영 스님은 많은 말과 웃음을 통해 마주앉은 이를 행복하게 하는 묘한 재주를 지녔다. 그는 "활달한 성격 덕분에 모임 뒤풀이에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direct119@


누구는 ‘땡중’이라 부르고, 누구는 ‘스님’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시인’이라고 칭한다. 곡인무영 스님은 세간에 떠도는 이런 얘기를 전하자, ‘씩’하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깜냥도 안되면서 호기심만 넘치는 수행자”라고 했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가수 이승철이 중학교 같은 반이라며 “나는 기억해도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태지와는 같은 학교를 다닌 후배”라고 스스럼없이 강조했다.



인터뷰어 입장에선 즐거운 대화다. 질문을 위해 짜내야할 고민도 없고, 긴장할 이유도 없다.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는 그의 언변은 기사의 ‘ABC’를 완성해주는 맞춤 서비스 같았다.

긴 말문처럼 그의 행동반경도 전국구, 아니 글로벌로 향한다. 25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교리가 아닌 행동으로 체험하고 소통하며 배우는, 스님인 듯 개그맨인 듯 정체가 묘연한 현자를 만나 ‘그가 사는 오늘’을 들어봤다.



곡인무영 스님.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direct119@<br>
곡인무영 스님.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direct119@
“제가 마티스로 55만km 뛴 뒤 지금 프라이드로 갈아타고 전국에 탁발을 다닙니다. 탁발하면 흔히 일용할 양식을 생각하는데, 저는 문화탁발을 하죠. 돌아다니면서 사람만나는 게 제 업무인 셈입니다. 사람의 삶을 포대에 담아 필요하면 꺼내주는 그런 일을 해요.”

그의 문화탁발은 지향점이 없다. 오로지 붓다가 실천한 삶의 흔적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흔적이 지향”이라는 그의 삶은 누구를 가르치는 행위를 경계한다.

“제가 사교적이고 돌아다니는 성향이라 배운 만큼 겨루는 ‘걸양’(이론)대신 ‘탁발’(행동)을 통해 사람과 교류합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에게 ‘이렇게 삽시다’라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하죠. 제가 살아온 삶이 결국 살아가고 싶은 삶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야 그들의 삶속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어요.”


만난 사람들 뒤풀이 모임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그는 낯선 교류에서 오는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경계의 문턱을 낮춘다. 이를테면 5훈채(마늘, 파 등 매운 5가지 채소)는 불가에서 금기하는 음식이지만, 그는 ‘금해서 못 먹는다’라고 말하지 않고 ‘편식 장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렇게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야 소통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사람들은 모두 외로움이 많고 인정욕구도 강해요. 그래서 내편을 만들어 공감을 얻으려하고, 선과 악을 나눠 ‘끼리 문화’를 형성하려고 하죠. 저는 그런 흐름에 반격을 가하거나 설명하려들지 않아요. 그냥 동조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편해질 때, 제가 살아온 얘기를 들려줍니다.”



불교적 용어로 해석하자면, 그의 행위는 ‘양변을 여의는’ 과정이다. 분명한 끝이 보이는 양변의 경계성을 없애 그 경계의 폭을 우주만큼 넓히자는 것이다. 변의 경계가 구분되는 순간, 좌우는 늘 대립하고 다른 생각은 수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곡인무영 스님은 “부처는 두께 없이 투명한 양면이라는 표현으로 삶의 행위를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곡인무영 스님은 자신을 이판도 사판도 아닌 '삼판 수행자'라고 불렀다. 교리와 종무 뿐 아니라, 실천적 삶을 살아야한다는 의미로 붙인 명칭이다.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direct119@<br>
곡인무영 스님은 자신을 이판도 사판도 아닌 '삼판 수행자'라고 불렀다. 교리와 종무 뿐 아니라, 실천적 삶을 살아야한다는 의미로 붙인 명칭이다.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direct119@
그가 출가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중1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절에 모시면서 깨달음을 얻은 뒤 불가에 귀의했다. 교리를 익히면서 그가 관심을 둔 새로운 영역은 유럽 철학이었다. 특히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브루디에 꽂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제가 제일 못하는 것이 시주예요. 어디가서 뭘 요구하는 일을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시내버스 운전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6년간 벌면서 한국방송통신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죠.”



확정적 진리를 모색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럽 철학은 극과 극이 통하거나 정답이 없는 불교와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는 공부를 통해 얻은 이론의 언어를 일반인과의 교류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사용해야하는지 아직도 ‘고민중’이라고 했다.

“저 혼자 아는 단어를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기 위해 지금도 수행하며 공부하고 있어요. 만민공동어인 ‘에스페란토어’처럼 말이에요. 아직 ‘깜냥’이 안되지만 그들의 언어와 제 언어가 맞춰질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전국 수행길을 통해 얻은 그의 역할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가수 인순이가 만든 다문화 대안학교인 해밀학교에서 이사를 맡아 후원모집 등의 일에 적극 나서고 있고, 전남 지역 작가들을 프랑스에 진출시키는 역할도 맡고 있다.



곡인무영 스님.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direct119@<br>
곡인무영 스님.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direct119@
밖으로의 수행에 천착하는 그는 “종교는 탈종교일 때 가장 종교적”이라고 했다. “신앙에서 신행으로 넘어오는 것만이 종교를 종교로 머물게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실은 그 과정이 너무 협소하죠. 기성 종교들은 의례에 70, 80% 이상 무게를 두니까요. 탈 의례로 실천적 삶을 사는 일은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불교 용어 중 '이판'은 참선을 수행하는 일, '사판'은 행정 등 종무일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곡인무영 스님은 스스로 ‘삼판 수행자’라고 했다. 이를 두고 박쥐니 회색분자니 말들도 많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승복을 고쳐 매고 길을 나섰다.

그가 어디로 향할까 잠깐 궁금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쳤다. 그의 말대로 우리가 걷는 모든 길이 처처법당(모든 곳이 부처님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