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금융문맹 퇴치"…12년간 금융교육 10시간도 안돼

머니투데이 기성훈 기자 2015.05.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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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교육 이대로 좋은가]<상>수박 겉핥기…2018년 '통합사회' 교과서 되레 내용 축소

편집자주 교육부는 2018년부터 시행되는 고등학교 문·이과 통합과정에 적용할 통합사회 교과서를 만들고 있다. 오는 내용이 9월 확정된다. 선택과목에 그쳤던 금융교육이 제대로 반영될 기회였지만 오히려 개정 시안에서 금융교육이 전체적으로 축소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합사회 교과 과정 확정을 앞두고 우리 금융교육의 현실을 짚어본다.

말로만 금융문맹 퇴치"…12년간 금융교육 10시간도 안돼


#50대 가정주부 A씨는 지난 2013년 동양그룹만 생각하면 아직도 잠이 안 온다. 당시 A씨는 동양증권 직원의 권유로 동양그룹 회사채에 4000만원을 투자했다. “은행 상품보다 높은 이자가 가능하다”는 직원의 말만 믿었다. 자녀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돈이었다. A씨는 “회사채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고 직원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면서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며 뒤늦게 후회했다.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태, LIG건설·동양그룹 불완전 판매 사태는 금융사가 손실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판매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투자상품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지식 부재’도 화를 키운 원인 중 하나였다.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이후 금융사 규제 강화와 금융교육 강화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우리의 금융교육 현실은 여전히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공교육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선진국과는 크게 대조된다는 지적이다.

◇초·중·고교 12년간 10시간도 안 되는 금융교육



21일 금융권 및 교육계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교 전체 교과의 경제교육 비중은 1%(약 35시간) 수준이다. 금융 관련 부분은 그 중 10%도 안 된다. 교사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금융교육은 총 12년 동안 10시간도 안되는 게 현실이다.

교육 내용 역시 부실하다. 초등학교 사회와 실과 과목의 각각 1개 단원에 금융교육이 일부 포함돼 있다. 중학교에서도 사회와 기술·가정에 포함돼 있다 보니 실생활에 응용할 만한 내용도 담지 못한다. 경제생활의 이해, 진로와 생애설계 등 ‘수박 겉핥기’식 전달에 그치고 있다.

서울 양정중학교 김나영 교사(사회)는 “사회 과목 중 금융부문은 1개 단원인데다 교과서 가장 뒤에 배치돼 있다”며 “기말고사 이후여서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술·가정에도 금융관련 내용이 있지만 기술·가정 단원을 가르치다 보면 넘어가기 일쑤라 금융교육이 사실상 어렵다”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 금융이 포함된 교과목은 모두 선택과목이다. 이러다 보니 2015학년도 대학수능시험에서 전체 36만5999명의 수험생 중 1만475명만(2.9%)이 경제를 선택했다. 최저 응시율 과목을 면치 못했다.

교육부가 2018년부터 적용할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서를 만들기로 하면서 ‘금융’을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지난달 발표된 초안을 보면 금융 내용은 ‘개인의 생애주기에 적합한 금융관리 등 생애설계’ 뿐이다. 그것도 금융과 동떨어진 ‘인구와 인구 문제’ 단원에 반영됐다.

최 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 교수는 “개정 시안에도 금융내용이 전체적으로 축소돼 초·중·고교 학생들의 금융이해력 수준이 더욱 저하될 우려가 크다”면서 “대다수 고등학생이 경제를 수능 선택과목으로 선택하지 않아 금융교육 없이 대학이나 사회로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교육 강화하는 선진국 “금융위기 후 정규교과목 추진”

미국, 영국 등 해외 선진국은 다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회성 교육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학교 정규 교과목으로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각 주 소관인 교육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방차원의 학교 금융교육을 강화했다. 미국 43개 주가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시켰고, 17개 주에선 고등학교 의무교육으로 편성했다. 특히 2008년 대통령 직속 금융교육자문위원회를 둔 미국은 2013년엔 ‘청소년을 위한 금융역량 강화 자문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했다.

영국은 작년 9월 경제·금융교육을 중·고교(만 11~16세) 필수 과목에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수학 교과의 상당 부분을 △화폐 기능과 사용 △개인 예산 세우기 △투자위험 알기 등 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는 금융 관련 내용으로 바꿨다. 호주도 2008년부터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금융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결정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학교 교육은 부모 간 금융능력 차이로 인한 자녀 금융교육의 불균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라면서 “학교를 중심으로 체계적이고 금융 실생활에 유용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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