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플랜…이재용 부회장의 실행 1년 성공적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2015.05.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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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 건강 꾸준히 호전 중…이 부회장 위기의 삼성에 희망 쐈다

2014년 4월 17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요양과 경영구상을 마친 뒤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DB2014년 4월 17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요양과 경영구상을 마친 뒤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DB


지난해 4월 22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42층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실.

이 회장은 6개월간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체류를 끝내고 귀국한 지 5일 만에 서초동 본사를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주요 현안에 대한 최종 'OK' 사인을 내렸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등 삼성 그룹에 위기가 닥쳐올 때를 대비한 그룹 사업재편 시나리오를 주문했고, 이에 대해 수 없는 검토와 점검 후 일본에서의 보고에 이은 최종 사인을 하는 날이 이 회장의 6개월만의 출근 날이었다.



주요 현안에는 제일모직 상장과 화학 계열사의 매각 등 삼성 그룹의 주요 현안 등이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8일 후인 5월 10일 저녁 이 회장이 쓰러졌다.

그날 이 회장이 저녁 식사 후 느낀 답답함은 급성심근경색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는 것을 모두들 뒤늦게 알았다. 저녁 11시께 이 회장이 경호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급히 이송된 소식을 접한 머니투데이는 11일 오전 0시 30분경부터 순천향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한남동 자택인근에서 밤을 새웠다.



이 회장의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삼성 그룹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이 회장의 응급실행을 알았던 시점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현재 수술 중'이라는 삼성 측의 설명에 이 회장이 안정되기까지 기다리며 첫 보도가 나가기까지 10시간을 기다렸던 것이 그날 밤과 새벽이다.

그로부터 어느덧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위급한 상황을 무사히 넘기고 회복 치료에 들어간 이 회장의 의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부재 속에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돌아갔다.


이 회장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이재용 부회장의 실행력이 더해져 실적 악화의 위기를 넘겼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 부회장은 지난 1년 동안 경영자(Executive)이자 '실행자(Executant)'로서 위기 상황 속에서도 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서 응급 심장시술을 받은 가운데 지난해 5월 11일 오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경기소방 헬기가 착륙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br>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 증세를 일으켜 병원에서 응급 심장시술을 받은 가운데 지난해 5월 11일 오후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경기소방 헬기가 착륙하고 있다./사진=이기범 기자
◇"재활치료 진행 중"= 지난해 5월 10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이 회장은 1년째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신체 건강 상태는 꾸준히 호전되고 있지만 아직 인지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는 게 삼성 안팎의 전언이다. 주변 자극에 일정 부분 반응하며 휠체어 운동 등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매일 병원에 들러 이 회장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이 회장의 퇴원 가능성에 대비해 서울 이태원동 자택 내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도 했지만 아직 병원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이따금씩 증권가를 중심으로 이 회장의 상태가 위독하다는 '악성루머'가 떠돌기도 하지만 삼성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한다. 최근 브리핑에서도 삼성은 "(호전되고 있다는 것 외에) 크게 얘기할만한 건 없다"고 밝혔다.

◇지배구조 개편에 빅딜도…"지주사 전환 없다"=이 회장의 와병 중에도 삼성그룹의 밑그림은 빠르게 변했다. 그룹의 큰 틀을 바꾸는 지배구조가 개편됐고 화학·방산 등 일부 사업은 팔렸다.

사실 삼성의 변화는 2013년 7월부터 시작됐다.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사들이고 삼성에버랜드가 제일모직 패션부분을 인수한 게 시발점이었다.

이 회장의 입원 직전 삼성SDS의 상장이 공식화 됐고 입원 이후인 지난해 6월에는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의 상장이 추진됐다. 두 회사 모두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회사들이다.

제일모직의 상장과 계열사간 지분정리 등을 통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단순화됐다는 평가다.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SDI(삼성카드)'로 이어지며 지배구조가 심플해졌다.

지난해 11월에는 삼성테크윈·삼성종합화학 등 화학 및 방산계열사 주식을 한화그룹으로 넘기는 빅딜을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주력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모든 것을 잘 할 수 없다면 잘하는 사업(전자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의지를 이 부회장이 실행한 것이다.

◇JY, 글로벌 광폭행보…M&A도 적극적=이 부회장은 지난 1년간 실질적인 리더로서 그룹을 주도하면서 대외적으로도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 29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사진=임성균 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 29일 중국에서 열린 보아오포럼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사진=임성균 기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격적인 M&A(인수합병)이었다. 이전까지 삼성은 M&A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수시로 기업사냥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이후 삼성전자의 해외기업 M&A건은 8개에 달했다.

특히 수시로 해외 곳곳으로 출장을 다니며 각국 정상이나 기업계 거물들과의 교류도 이어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1년 새 4번이나 만남을 가졌다. 지난해 7월 미국에서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을 만났는데 한 달 뒤 삼성전자와 애플이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에서 특허소송을 전격 취하하면서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또 해외출장 시에도 별다른 수행인력 없이 다니며 성과를 이뤄내 '실용주의'가 주목받았다.

올 들어서는 '갤럭시S6'와 'S6엣지'라는 혁신 성과물을 내놓으며 호평을 받고 있기도 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중국 저가 스마트폰의 공세로 잠시 주춤했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지난 1분기 6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올리며 V자형 반등을 이끌었다.

갤럭시S6 효과가 반영되는 올 2분기에는 8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대세를 이룬다.

이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은 가까운 친척들에게 이 회장이 회복돼 가는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회장의 건강이 비관적이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회장의 의식이 깨어난다면 지난 1년간 '후계자의 실행력'에 만족감을 표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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