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특별사면 제도 개선"…국회선 15년째 '제자리'

머니투데이 박용규 기자 2015.05.12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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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 [너무 특별한 특별사면 ①] 사면법 개정안 16대 이후 28건 발의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대통령 특별사면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두차례의 특별사면을 받은 것으로 놓고 여야가 진실게임을 벌이면서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제도 자체가 도마에 올랐다.

특별사면권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그동안 유력 경제인 또는 정치인들을 위한 '특혜'로 활용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특별사면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의 논의는 15년째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 '깜깜이' 특별사면

성 전 회장이 어떻게 참여정부에서 두차례나 특별사면을 받을 수 있었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있다. 사면심사위원회 회의록 공개 규정은 있지만, 장막 뒤에서 이뤄지는 대상자 선정이나 최종 결정 과정은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 아니면 진실을 밝힐 방법도 요원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사면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사면이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특별사면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방안에 대해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5일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을 주재로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내달까지 개선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를 위해 법무부는 실무반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회에 특별사면 관행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특별사면'의 문제가 제도 자체보다는 대통령의 의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다.

국회 한 관계자는 "특별사면 제외 대상을 확대하거나 법령을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 부담이라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특별사면 제도개선 방향은 결국 사면위원회의 투명성 강화와 일부 사면대상자를 정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국회 논의, 15년째 제자리 걸음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3년 특별사면제도에 대한 보고서에서 △사면대상 선정의 형평성결여 △사면 대상·기준·한계 등에 대한 세부규정 부재 △국회 동의 절차 부재 △사면심사위원회 구성 및 구속력 부재 △사후 특별사면 판단 장치 부재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와 관련, 그동안 국회에서도 관련법 개정안이 적잖게 발의됐다. 16대 국회 이후 28건의 사면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19대 국회에서만도 11건이 제출됐다. 19대 국회에 발의된 11건의 사면법 개정안은 △사면 제한 법령 추가 △사면 불가 대상자 확대 △사면위원회 구성 변경 등을 골자로 한다.

구체적으로 특별사면 제한 대상을 추가하는 개정안들은 주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자·성폭력 관련 범죄 등 특정한 법령을 어긴 자는 특별사면의 대상이 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다. 특경가법은 대개 기업인들과 관련돼 있다.

대통령 친인척이나 정무직 공무원들을 원천적으로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들도 있다. 사면심사위원회의 위상을 높이고, 위원 구성을 다양화하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는 2013년과 2014년 각각 한차례씩 법안심사를 했을 뿐 아직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있었던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에서는 사면 제외 대상 법률을 추가하자는 여당의 주장과 사면심사위원회의 운영방안 개선을 주장하는 야당의 입장이 부딪히면서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사면법 개정 시도는 16대 국회에서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2003년 원희룡 제주지사가 의원 시절에 발의한 사면법 개정안은 법무부 산하에 사면심사위원회를 두고, 형기 3분의 1을 넘겨야만 사면 대상자가 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헌정질서파괴범 등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임기만료 폐기됐다. 이후 17대 국회 말미에서야 사면심사위원회를 신설하는 법안이 만들어졌을 뿐 국회에서 특별사면제도에 관한 논의는 이후 큰 진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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