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포르투갈 재정위기 맞게 한 검은돈](https://orgthumb.mt.co.kr/06/2015/03/2015032518565653670_1.jpg)
우리의 경우 그동안 지하경제를 줄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1990년대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2000년대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 확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국세청이 조세회피 지역들과 조세협약을 맺는 등 역외 탈세방지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에 지하경제 규모는 줄어 들어들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그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6~18%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기업들의 탈세목적과 방식은 다양하다. 세금을 덜 내려는 단순한 목적 외에도, 기업경영권방어와 승계를 위해 혹은 정경유착을 위한 비자금조성을 위해서도 탈세를 한다. 그중에서도 일부 재력가들의 변칙적인 상속세와 증여세 포탈행위는 더욱 염치가 없어 보인다. 이들은 아무런 세금부담 없이 자녀들에게 재산 대물림을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차명주식, 재산 해외반출, 회계장부조작, 그리고 여기에 더해 그룹 자회사에 일감몰아주기 방식까지도 동원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를 무너뜨릴 뿐 아니라 재벌들의 재산상속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도 대표적인 예가 역외탈세이다. 역외자유무역협정(FTA) 확산과 기업의 세계화 전략 등으로 국제 거래가 급증하면서 역외탈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역외탈세(域外脫稅, offshore tax evasion)는 조세회피지역에 유령회사를 차려 세금을 내지 않거나 축소하는 행위를 이른다. 구체적으로 해외에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나 위장계열사 등을 차려두고 위장·가공거래 등을 통해 세금을 탈루,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허위 또는 과다경비 계상도 역외탈세자들이 주로 활용하는 수법 중 하나다. 이는 국내 회사가 조세회피처의 페이퍼컴퍼니와 거래가 있는 것처럼 위장해 대금을 지급하거나 실제보다 과다하게 대금을 지급해 자금을 해외로 유출하는 방식이다.
조세회피처란 법인에서 실제로 얻은 소득의 전부나 일정 부분에 대한 조세의 부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뜻한다. 여기서는 세제상에서 우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외환거래 등 금융거래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며,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조세정보의 교류에 굉장히 소극적이다. 특히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철저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탈세나 돈세탁 등 자금거래의 온상이 되기도 하는데, 바하마·버뮤다제도 등의 카리브해 연안과 중남미의 국가들이 대표적인 조세회피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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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임종철 디자이너](https://orgthumb.mt.co.kr/06/2015/03/2015032518565653670_2.jpg)
그러나 이 ‘금융실명법’은 금융기관이 거래당사자가 본인임을 확인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 금융실명제에 위반해 계좌를 개설한 사람은 따로 처벌하지는 않았다. 다만 계좌개설자가 타인의 명의와 신분증을 도용해서 계좌를 개설한 경우라면 사문서위조죄에 의해 처벌 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어서 아직도 차명거래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대표적인 예가 '대포통장'으로, 이는 제3자 명의를 불법 도용하여 실제사용자와 명의자가 다른 통장이다. 명의를 도용해 3자가 통장을 개설한 행위는 '금융실명법' 위반이지만, 발급된 통장 자체는 사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상태이다. 때문에 대포인지 아닌지 여부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명의도용 사실이나 통장을 이용한 범죄 사실이 발각되어 해당통장이 ‘대포통장’임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웠다.
양도성 예금증서인 CD도 그렇다. CD는 무기명 상품이란 특징이 있어,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후 맨 처음 은행에서 인수한 사람과 최종 만기 때 찾는 사람은 실명을 밝히도록 되어 있으나, 만기 이전 거래에선 무기명 거래를 할 수 있어 거래자의 신원 확인이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자금세탁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불법적인 차명거래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개정된 금융실명법이 2014년 12월부터 시행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이다.
자금세탁(Money Laundering)행위도 지하경제의 온상이 되고 있다. 자금세탁이란 용어는 1920~30년대에 마피아가 불법적인 도박이나 마약 거래 등으로 얻은 수입을 주로 세탁소의 합법적인 수입처럼 위장하면서 등장했다. 이 자금세탁의 개념은 나중에 ‘자금의 위법한 출처를 숨겨 적법한 것처럼 위장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로 일반화 되었다. 가령 불법적으로 얻은 수입금을 가명으로 만든 계좌를 통해 은행에 입금시킨 다음, 엄격한 금융비밀제도를 갖춘 국가에 송금했다가 해외자금인 것처럼 가장해서 국내로 들여와, 새로운 범죄자금에 사용하거나 또는 합법적 경제활동에 침투시키는 것이 자금세탁의 예다.
자금세탁의 대부분은 불법 비자금을 조성· 은닉하거나 탈세를 위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으나, 최근에는 테러자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돈세탁을 했다는 의혹이 있어서 여러 나라의 금융기관이 테러리스트 일원의 계좌를 동결하기도 했다.
한편 지금은 많이 둔화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검은 돈이 스위스로 몰려들었다. 이 음성자금 운용에서 비롯되는 스위스의 금융 산업은 스위스 경제의 버팀목이기도 한데,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12%에 달한다. 스위스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높은 것은 바로 스위스 은행의 비밀유지 조항 때문이다. 스위스 연방은행법에 따르면 은행 직원이 고객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형사적 제재조치( 징역이나 벌금형)를 받게 된다. 그런데 스위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사회의 압박에 투항하면서 이 비밀금고의 빗장을 풀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스위스가 완전히 '은행비밀주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