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IRP, 금융상품 '백화점'은 어디?

머니투데이 한은정 기자, 오정은 기자 2015.03.1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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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펀드상품 천편일률적..다양성 없다"

#직장인 A씨는 연말정산 세액공제를 추가로 받기 위해 얼마전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IRP)에 가입했다. A씨는 퇴직연금 확정기여형(DC)으로 이미 국내 채권혼합형 펀드에 전액을 투자하고 있어 IRP는 해외펀드로 투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원하는 펀드를 찾지 못해 금융사 직원이 추천하는 펀드에 투자할 수 밖에 없었다.

연말정산 세금폭탄을 맞은 직장인들의 IRP 가입이 늘면서 금융사들도 퇴직연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투자자들이 원하는 상품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금융사 직원이 추천하는 펀드로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추천펀드가 천편일률적이라 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퇴직연금 IRP, 금융상품 '백화점'은 어디?


◇많이 팔린 펀드 위주로 추천..해외펀드 선택폭 좁아=퇴직연금 사업자인 한국·미래에셋·삼성·NH투자·현대·신한·KDB대우·대신증권 등 8개 증권사의 퇴직연금펀드 라인업을 분석한 결과 적게는 39개부터 많게는 100개까지 퇴직연금 펀드를 갖췄다. 하지만 증권사별 추천펀드 목록은 지난해 자금 유입이 집중됐던 펀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차별성이 없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펀드로 유입된 1조2877억원의 73%에 해당되는 9475억원이 국내 채권혼합형 펀드로 흘러들어갔다. 채권혼합형 펀드로 들어간 자금의 97%는 KB퇴직연금배당40자C(3944억원), 신영퇴직연금배당채권자C형(2394억원), 한국밸류10년투자퇴직연금 1(2291억원), 이스트스프링퇴직연금인컴플러스40자 클래스C(582억원) 등 일부 펀드에 집중됐다.



8개 증권사 중 대우증권을 제외한 7곳의 증권사가 추천하는 펀드 목록에는 이들 펀드가 적게는 1개에서 많게는 4개까지 꽉 채워져 있다. 국내 추천펀드 목록은 4~10개 수준으로 추천펀드의 30~50% 가량이 많이 팔린 펀드로 구성됐다. 대우증권은 국내 채권혼합형 펀드 대신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에셋플러스 코리아리치투게더 펀드와 KB퇴직연금배당 펀드를 추천했다.

해외펀드는 퇴직연금용으로 나온 펀드가 많지 않아 선택의 폭이 더욱 줄어든다. 지난해 퇴직연금펀드 가운데 해외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1447억원이며 이 중 절반 가까이 되는 740억원이 미래에셋퇴직플랜 글로벌그레이트컨슈머40자 1[채혼]종류C에 투자되는 등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로만 809억원이 들어왔다. 올해는 해외펀드로 2728억원이 들어오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유입된 자금 규모를 넘어선 가운데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해외펀드로 1934억원이 집중 투자됐다.

한국투자증권, 현대증권, 대신증권 등은 해외펀드 라인업이 10개 이하이고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이 각각 34개와 33개로 가장 많다. 나머지 증권사는 10~20개 사이다. 추천펀드 목록은 절반 이상, 심지어 어떤 경우는 모든 펀드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상품으로만 채워져 있다.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인기펀드의 경우 대부분 증권사에 라인업돼 있지만 고객이 원하는 상품이 없다면 원하는 상품이 있는 금융사의 IRP를 복수로 개설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펀드고르기 어려우면 '랩'..ETF·채권·ELB도 편입=펀드를 개별적으로 고르기 힘든 투자자들은 퇴직연금 랩 서비스를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퇴직연금 랩어카운트 서비스인 '글로벌자산배분 퇴직연금 랩'은 지난해 1493억원, 올해 300억원 가량이 유입되며 투자잔고가 3462억원으로 늘어났다. 이 상품은 미래에셋증권 자산배분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상위 20% 이내의 국내외 우수펀드를 엄선해 투자자들에게 추천해준다. 최근 3년 연환산 수익률은 5.13%이다.

일반 펀드뿐만 상장지수펀드(ETF), 채권, 파생결합사채(ELB) 등도 IRP에 편입해 운용할 수 있다. 대우증권은 퇴직연금 사업자 중 유일하게 ETF 거래가 가능하다. ETF는 한국거래소에 상장돼 일반 주식처럼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고 수수료가 저렴해 퇴직연금처럼 장기간 투자했을 때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에서는 IRP계좌를 통해 채권에 직접 투자할 수 있다. 국민주택채권, 국고채, 물가채 등 국채를 비롯해 특수채, 회사채 등에 모두 투자할 수 있다. 특히 고액 자산가들의 경우 이미 IRP 계좌를 통해 안정적인 국채 위주로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 국채는 사실상 한도에 무관하게 전액 원금보장상품으로 인식돼 고액자산가들의 선호도가 높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현재 1억원이상 IRP 고객의 40%는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며 "물가상승 위험이 해소되는 물가연동국채의 가입비중이 가장 높다"고 설명했다. 물가연동국채는 물가가 오른 만큼 원금이 늘어나고 채권 표면금리에 따라 이자는 따로 받는 상품으로 정부가 전액을 지급보장한다.

원리금보장 상품 중에서는 최근 주가연계 ELB 투자가 늘고 있다. ELB는 원금이 보장되는 주가연계증권(ELS)으로 원금이 보장되면서도 예금금리보다 높은 연 3% 내외의 수익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증권사에서 편입가능하다. 다만 ELB는 자사상품 투자한도 기준으로 인해 해당 증권사의 상품은 3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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