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김영란법·美대사 피습'...공무원들은 웃는다

머니투데이 세종=정진우 기자 2015.03.06 06:00
글자크기
정진우정진우


국민들을 경악케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태가 발생한 5일 오전. 언론의 관심이 이 사건에 쏠려 있을때 눈에 띄는 제목의 보도자료 하나가 이메일로 왔다.'박근혜 정부, 그랜드슬램 달성'이란 자료였다. 경기지표가 계속 추락하고 있는데다 대통령 지지율도 바닥을 치고 있고, 어느 것 하나 좋을 게 없는데 무슨 그랜드슬램일까.

메일을 열어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최근 내정한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홍용표 통일부 장관 후보자,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4명 모두 위장전입을 했다는 것.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배포한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장관 후보자, 위장전입 그랜드슬램'이란 보도자료였다.



생각해보니 오는 9~11일 이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예정돼있다. '김영란법'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끌벅적해서일까. 최근 언론보도 흐름을 보면 이들의 인사청문회에 대한 관심은 온데간데 없다. 장관을 새롭게 맞이할 부처들도 청문회를 앞뒀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다. A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준비중인 한 공무원은 "위장전입 등 논란이 많지만 김영란법과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 사태로 국민들 관심이 쏠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다 정말 이번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식 의혹만 제기하다 소리소문없이 지나갈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삶과 밀접한 정책들을 만드는 '장관님'들의 임명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인데, '무시험 통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정책 전문가들은 오히려 지금처럼 여론의 관심이 각종 사건 사고에 쏠렸을때가 제대로 된 청문회를 할 기회라고 조언한다. 국회의원들이 장관 후보자의 개인 신상을 들춰내며 언론에 이름을 올리기 힘든 시기니만큼, 제대로 된 정책검증을 해보라는 것.

때마침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들이 '장관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교수들이 장관을 지낸 수십명의 인사들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과 자료 분석을 통해 "과연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선 어떤 장관이 필요한가"를 학술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교수들은 성과가 좋은 장관들을 수차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들이 성공적으로 이끈 정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분석했다고 한다. 결과물도 거의 마무리 단계로 조만간 책자로 나올 예정이다. 처음으로 성공한 장관의 비법이 공개되는 셈이다.

청문회를 준비하는 국회의원들은 '장관 리더십'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들을 초빙해서라도 정책 청문회를 준비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도덕적 검증은 제대로 하되, 장관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된 잣대로 냉정하게 들여다보자는거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어쩌다 장관에 임명돼 1~2년 세금 낭비하며 허송세월하다 사라질때마다 국민들은 울화통이 터졌다. 그가 아무리 도덕적 흠결이 없었어도 말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