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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 얼마나 힘든 정신노동인지 모르는 고객들은 하루 90만원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하고 깎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근대 통역의 발상지인 유럽의 선진국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직 통번역의 본질을 이해 못하고 "외국어만 좀 하면 통번역은 저절로, 쉽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아직 뿌리깊게 남아있다. 하루 통역료가 90만원이 된지 10년이 넘었으니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더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최근 이 통역료가 흔들리고 있다. 고객들의 잘못만이 아니다. 1990년대 말까지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이 독점상태를 유지하다가 1997년 서울에 두 번째 통역대학원이 생기자, 양자 구도의 경쟁이 시작됐다. 2003년 세 번째 대학원 설립에 이어 미국과 호주의 대학원 졸업자들이 국내로 들어옴에 따라 통역시장은 점점 더 혼탁해 진 게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1세대 통역사들이 모여 한국통번역사협회(KATI)를 만들어 우수한 통역사들을 가려내기 위한 '통역사 국가 인증제'를 만들려 노력하고 있지만 이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캐나다와 호주 등지에서는 일찌감치 국가가 개입해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0여년이 흐른 지금 갑자기 인증제를 만들기에는 이해당사자와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우스개 소리로 "통역사 중 한 사람이 국회로 진출해야 인증제 관련 입법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먹고 살기 바쁜 국민들과 정치에 바쁜 정부나 국회에게 통번역 인증제는 배부른 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에서 오역이 생기고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이 잘못 번역되었다고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어야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떠들다가 며칠이 지나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잠잠해지고 만다.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관광객들이 몰려와 보건복지부가 의료통역사 양성을 시작한 지 7년, 의료통역 국가인증제 추진사업도 아직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 부처들 간의 교통정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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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증제가 기약이 없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통역대학원들은 고객이 믿고 쓸 수 있는 학생을 엄격한 기준을 통해 졸업시켜야 하고, 졸업한 통역사들은 고객이 믿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하고, 통역사를 쓰는 고객들은 훌륭한 통역과 통역사를 고르는 눈을 가져야 한다. 하루 90만원의 통역료가 결코 비싼 것이 아님을 이해하고 다른 예산을 줄여서라도 통역료를 집행해야 국제회의가 끝난 후 "싼 게 비지떡이었다"고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한국통번역사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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