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피의자신분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해 12월17일 오후 서울 서부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 사진=머니투데이 홍봉진 기자
순간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12일 열린 '땅콩회항' 사건의 당사자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선고 공판. 재판부는 심리 도중 조 전 부사장의 반성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시종일관 '내 탓이오'이라는 반성문의 내용과 해당 내용을 공개한 재판부. 이례적인 재판 상황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해당 반성문에는 이번 사건이 화를 주체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는 조 전 부사장의 고백이 담겼습니다. 조 전 부사장은 "소란을 만들고 정제 없이 화를 표출했으며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도 품지 못하고 분노를 여과없이 드러냈다"고 말했습니다. 불과 10여일 전 열린 결심 공판에서 사건의 책임을 직원들 탓으로 돌리는 듯한 태도는 온데 간데 없었습니다.
급기야 지난 구치소 생활을 공개하면서 '사람에 대한 배려'를 배웠다고 합니다. 조 전 부사장은 "제 주위 분들이 스킨과 로션, 샴푸와 린스, 과자도 선뜻 내어줬고 이 사건에 대해선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이런 것이 사람에 대한 배려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면서 말입니다.
'인정'과 '반성', '교훈', '다짐'으로 이어지는 조 전 부사장 반성문 공개에 방청객은 술렁였으나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의 반성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반성문을 근거로 조 전 부사장이 이 사건 범행의 세부적인 사실관계를 일부 다투지만 전체적인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같은 취지는 재판부가 설명하는 양형 이유에서도 드러납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발생할 무렵 조 전 부사장은 타인에 대한 마음의 문이 닫혀 있었다면 앞서 본 반성문의 내용을 보면 타인을 향하는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잘못을 사죄할 준비가 된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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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재판부가 반성문을 공개해 조 전 부사장 측에 반성과 합의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으로 풀이됩니다. 재판부는 "박 사무장이나 김도희 승무원의 경우도 조현아 피고인에 대한 닫힌 마음의 문을 조금만 열어 준다면 조 전 부사장에게서 직장 상사로서 지위에서 오는 열등감이 아니라 인간적 풍모로 인격적 열등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줄 대승적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1년 징역을 선고하면서 반성문을 공개해 '형량이 적은 게 아니냐'는 논란을 잠재우는 동시에 조 전 부사장에게 사회적 메시지까지 전달했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의 메시지가 전달됐다면 조 전 부사장 측이 자백하거나 합의에 나설 것"이라며 "항소심에서도 전혀 변경된 게 없다면 선처할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습니다.
이로써 공은 다시 조 전 부사장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글로 써진 반성문은 참고자료에 불과할 뿐 해당 내용을 실천할지 여부가 향후 재판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조 전 부사장 스스로의 고백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