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도 몰랐던 제가 100만 청춘 위로한다니…"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5.01.3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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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의 주제가 '내일' 부른 '홍대 여신' 한희정…"담담한 보컬에 이미지 실으려 노력"

tvN 인기 드라마 '미생'의 주제가 '내일'을 부른 싱어송라이터 한희정. /사진제공=파스텔뮤직 tvN 인기 드라마 '미생'의 주제가 '내일'을 부른 싱어송라이터 한희정. /사진제공=파스텔뮤직


드라마 ‘미생’의 한편 한편이 끝날 무렵, 가슴 시린 슬픔과 답답한 통증을 위로해주는 언어가 있었다. 나지막이 속삭이듯, 건조한 색채로 우리에게 던지는 작은 울림, 인디 뮤지션 한희정의 노래다.

한때 ‘홍대 여신’ 3인방 중 한 명으로 불리며 화제가 된 그는 이 드라마에서 ‘내일’이라는 노래로 다시 한번 대중의 입에 오르내렸다.



‘모두가 돌아간 자리/행복한 걸음으로 갈까/정말 바라던 꿈들을 이룬걸까/~/또 하루가 가고/내일은 또 오고/이 세상은 바삐 움직이고/그렇게 앞만 보며 걸어가란 아버지 말에 울고~’(‘내일’ 중에서)

그의 덤덤한 창법은 단숨에 100만 청춘의 대변자가 되었고, 그의 인기도 금세 치솟았다. 2001년 그룹 ‘더더’의 보컬로 데뷔한 이후 15년째 개성 넘치는 음악으로 승부했지만, 요즘처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적은 드물었다. 최근 서울 홍대앞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인기는 잘 모르겠다”고 웃었다.



“‘내일’을 부르기 전과 별로 달라진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아요. 집에 TV가 없어서 ‘미생’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죠. 어릴때부터 미디어에 친숙하지 않았어요. 서태지의 ‘난 알아요’가 나왔을때도, ‘이게 뭐야?”할 정도로 무관심했어요. 집에 있을 땐 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뉴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접하는 게 전부예요.“

‘미생’의 김원석PD의 권유로 ‘내일’을 부른 그는 선율을 듣고 ‘담담한’ 톤이 얹혀야한다는 걸 직감했다. 이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 자신이 해왔던 것들의 상충성을 가끔 경험한 그에게 이 노래는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는 거울이어야했다.

“그래서 가사의 텍스트가 단순한 어떤 사실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속내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노래 자체가 소리로, 때론 이미지로 다가오는 그 무엇 말이에요.”


'홍대 여신' 3인방 중 한명으로 불리는 한희정은 "음악을 하면서 호기심이 끊이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장르 구분없는 나만의 음악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파스텔뮤직'홍대 여신' 3인방 중 한명으로 불리는 한희정은 "음악을 하면서 호기심이 끊이지 않았다"며 "앞으로도 계속 장르 구분없는 나만의 음악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제공=파스텔뮤직
곱상한 얼굴, 순진한 웃음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로 그를 ‘여린 뮤지션’으로 평가하는 건 결례다. 그룹 ‘더더’와 ‘푸른새벽’을 거쳐 솔로에 이르기까지 그는 팝과 록, 아방가르드를 두루 훑으며 관록의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지난해 5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독집 ‘날마다 타인’에선 ‘한희정이 맞나?’를 의심케할 만큼 깊고 단단한 음의 세계가 수놓였다.

솔로 1집과 2집의 극명한 차이만 봐도, 그는 무엇이든 손대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음악인의 자세가 쉽게 읽혔다.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대중음악에 국한하지 않았어요. 막연하게 늘 호기심으로 음악을 대했던 것 같아요. 소리 자체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제가 그 소리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궁금했거든요. 15년쯤 되니까, 이제 음악의 결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해요.”

2008년 솔로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희정은 고작 2장의 정규 음반만 냈다. ‘너무 게으른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한 장을 만들어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했다.

“솔로 1집을 만들 땐 ‘저 이런 음악하는 사람이에요’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2집에선 ‘사실은 이런 것도 하고 싶었어요’라고 고백하는 식이었죠. 3집? 글쎄요. 시간을 두고 좀 더 ‘나’를 들여다보면 또 엉뚱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어요?”

바삐 움직여야하는 ‘미생의 세상’에서 그는 ‘더딘 완생’의 꿈을 좇는 듯했다. ‘조금 늦어도 괜찮단 입맞춤에’ 다가오는 내일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자세에 위로의 향기가 다시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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