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반칙'도 OK? 불합리한 제도

머니투데이 김도윤 기자 2015.01.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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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 운동의 명암②]소액주주 배제한 채 경영권 강화…"누구를 위한 정관변경?"

한국증시에서 소액주주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중반이다. 이들은 예전과 달리 상장사들의 법규위반이나 주주권익 침해, 경영오류 등 기업들이 지닌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갔고, 이를 위해 소송 등 법적조치에 나서는 경우도 늘었다.

다수로 '뭉친' 소액주주들의 활동이 예전과 달리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변모한 것이다. 물론 소액주주들의 주장과 요구가 항상 올바른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한다는 한계 때문이다. 장기투자자 비중이 적고 이해관계가 복잡한데다 당초 목표만 달성되면 활동을 중단하는 것도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액주주들의 활동은 대주주와 기업의 '반칙'을 견제하고 주주권익을 개선하는 효과가 컸다는 점은 분명하다. "소액주주 활동의 그림자보다 순기능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소액주주 운동 활성화를 위해선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무엇보다 법·제도적인 측면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 문제해결이 원천적으로 막히거나, 주주들을 옴싹달싹 못하게하는 사례도 있기때문이다.



황금낙하산의 문제점이 거론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않다. 당초 우량기업 적대적 M&A(인수합병)가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적대적 M&A를 성사시킨 주주·경영진들이 피인수측 인사들을 퇴직시키려면 막대한 보상금을 내야 한다.

문제는 경영역량이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영진과 대주주, 회사를 과도하게 비호하는 장치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기업은 M&A 시장에서 외면 받고, 결국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청산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한 소액주주는 "적자가 누적된 부실기업이 M&A 시장에 나오더라도 황금낙하산 제도가 적용되면 자칫 수백억원의 퇴직보상액을 별도로 지급해야 한다"며 "특히 문제는 이와 관련한 정관변경이 이뤄질 때 소액주주들이 일일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정관변경은 주주총회에서 승인받게 되는데 섀도보팅을 통해 소액주주들이 참여하지 않아도 회사의 경영진끼리 모여 안건을 일사천리로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10~20% 정도의 지분을 보유한 경영진이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을 독단적으로 처리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중인 신일산업 (1,696원 ▲10 +0.59%) 역시 황금낙하산 조항이 이슈가 됐다.

이후 황금낙하산 조항을 신설하려는 기업이 우후죽순 늘면서 소액주주 활동에 더욱 제약이 가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3월 이후 황금낙하산 조항 신설을 시도한 기업은 코리아에프티 (6,190원 ▼270 -4.18%), 디지탈옵틱 (411원 ▲12 +3.01%), 내츄럴엔도텍 (2,345원 ▼5 -0.21%), 진원생명과학 (2,265원 ▲20 +0.89%), 인트로메딕 (5,850원 ▼260 -4.26%), 큐캐피탈 (310원 ▲3 +0.98%), 에듀박스 (700원 ▲76 +12.18%), 우노앤컴퍼니 (680원 ▲8 +1.19%), 에버테크노, 바이오싸인 (809원 ▲2 +0.25%), 세진전자 (18원 ▼24 -57.14%) 등이다.

더구나 회사의 재무구조나 경영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한 규모의 특별성과금을 책정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지난해 3월 정기주총에서 황금낙하산 조항을 신설한 세진전자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13년 영업손실 88억원, 당기순손실 215억원을 기록했고 현금성자산은 1억원이 안된다. 그럼에도 황금낙하산 관련 보상에 대표이사 50억원, 이사 30억원을 각각 지급하도록 했다.

황금낙하산 조항을 보유한 기업 중 적대적 M&A가 발생해 경영진이 임원에서 퇴임하게 될 경우 대표이사 한 명에게 퇴직금 외에 퇴직보상액으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회사도 있다. 셀트리온 (176,200원 ▼1,100 -0.62%)영우통신 (3,695원 ▼30 -0.81%)의 경우 퇴직금 외 퇴직보상액으로 대표이사에게 200억원, 각 이사에 50억원을 지급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소프트센 (628원 ▼11 -1.72%)은 퇴직금 외에 퇴직보상액으로 각 이사에 퇴직금의 100배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솔고바이오 (393원 ▲14 +3.69%)는 퇴직금 외에 퇴직보상액으로 대표이사에 연봉의 30배를 지급하도록 했다.

이 외에 씨유메디칼 (750원 ▲11 +1.49%), 내츄럴엔도텍, 경남제약 (1,044원 0.00%), 프로텍 (31,600원 ▲100 +0.32%), 원익큐브 (1,760원 ▲36 +2.09%) 등이 퇴직금 외 퇴직보상액으로 100억원 이상을 대표이사에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영권 보호장치로 도입된 초다수결의제도도 당초 취지와 달리 부작용이 많다. 이 제도는 이사나 감사 등 주요인사 해임을 거의 불가능하게 해 놨다. 예컨대 주총출석 주주의 90%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해임안건이 통과되는 식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지적되면서 주총이 파행을 겪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해 3월 오디텍 주총에서는 황금낙하산 조항을 정관에 넣으려 했으나 주주들의 반대로 부결됐고 아미코젠은 같은 이유로 정관변경을 자진 철회하기도 했다.

한 상장기업 IR(투자자업무) 관계자는 “경영진이 유능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경우 황금낙하산 등 제도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며 "그러나 횡령, 배임 등을 일삼는 경영진의 부도덕성을 풀기 쉽지 않다는 점은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분 10%를 보유한 경영진이 소액주주들의 눈을 피해 자신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의사결정을 행사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제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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