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알려지지 않은 아동학대 ‘방임’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15.01.1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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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어린 남자아이 둘이 한 겨울 추위에도 반팔 셔츠를 입고 뛰어다니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경기도 양평읍 포도나무동산 교회의 정왕훈 목사는 지역아동센터장에게 “좀 가서 봐 달라”고 했다. 센터장이 알아보니, 아이들은 9살 쌍둥이였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았다. 결혼신고 없이 살던 부모가 갈라선 후 아이들은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채 방임되고 있었다.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아동폭행사건을 계기로 뒤늦게 화제가 된 보고서가 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간한 ‘2013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다. 보고서 중에선 특히 어린이집 아동학대 중 신체학대가 73.6%에 이르렀으며, 가해자 중 65.3%에게만 고소고발 혹은 해임 등 조처가 취해졌다는 부분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보고서 전체를 찬찬히 읽다 보면 더 가슴 아픈 통계가 보인다. 아동학대 가해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부모(80.3%)라는 사실이다. 가정(81.9%)은 아동학대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였다. 아동복지시설(5.6%), 어린이집(3.4%)은 그 다음이었다.

아동학대는 한 번 일어나면 여러 가지 형태로 가해졌다. 이 중 2가지 이상의 학대가 복합된 '중복학대'의 비중은 전체의 43%로 가장 높았다.



눈에 띄는 건 방임(26.2%)이 정서학대(16.2%), 신체학대(11.1%), 성학대(3.6%) 비중보다 높다는 대목이다. 방임이란, 보호자가 자신이 보호해야 할 아동을 물리적으로 유기 혹은 방치하거나 필요한 교육, 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방임을 아동학대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다는 데에 있다. 심지어 교사 등 교직원, 의료인,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와 사회복지공무원 등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조차도 거의 절반은 방임을 아동학대로 여기지 않고 있었다.

가해든, 방임이든 원인은 개인한테만 있지 않았다. 학대행위자의 가장 주요한 특성은 양육태도 및 방법이 부족하다(32.6%)는 점이었다. 사회경제적 스트레스 및 고립을 가진 경우도 상당수(22.4%)였다. 부부 및 가족구성원 간 갈등(9.4%)은 3번째 특성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아동학대는 가해자의 아동 양육에 대한 ‘무지’가 가장 큰 원인이며, 가해자 자신의 사회경제적 문제가 두 번째 원인인 셈이다. 보고서는 “학대는 학대행위자의 개별적인 특성뿐 아니라 환경적인 요인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김치를 뱉었다고 아이를 때린 교사와 그걸 숨긴 원장이 왜 그랬는지는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또,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통과돼 모든 어린이집에 CCTV가 설치되면 어린이집 내 아동학대는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게 아동학대를 줄일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아이들의 잠재적 보호자이자 신고의무자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태도와 방법은 어린이집 교사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는 12년의 공교육이 기본 소양을 갖추도록 도와야 한다. 그게 안 된다면 직장, 이웃 공동체가 그 일을 해야 한다. 사회가 아동학대를 완전히 예방하는 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속은 막을 수 있다.

양평의 쌍둥이는 어찌 되었을까. 지역아동센터 실무자들은 제주도에 가 있던 생모를 찾아 출생신고를 하게 했다. 그런데 생모는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뒤늦게 초등학교에 진학한 아이들은 센터 교사들이 아침저녁으로 통학을 함께 해줬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이들은 밝게 잘 컸다. 아이들 아빠는 비정규직이나마 새벽부터 일을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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