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후배가 있어 물어봤다. “봤니?” “예” “그래 소감은?” “아빠한테 까불면 안되겠더라구요”
한때 드라마 작가를 꿈꾸던 시절 “내 얘기 쓰면 히트칠텐데”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은데 놀란 적이 있다. 들어보면 거대왈 심드렁해지는 얘기지만 본인들은 대단히 극적으로 기억하고 있곤 했다. 당시의 내게, 영화 속 덕수가 “내 얘기 한번 들어볼라나?” 하고 말을 꺼냈다면 왜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만들기 힘든지 시시콜콜 설명해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스크린에선 몇 십 년을 이웃해 의지했을 고모의 죽음은 물론 어머니의 죽음마저도 묘사되지 않는다. 주인공 평생의 트라우마, 흥남서 잃어버린 여동생도 이산 가족 상봉 때만 나오고 뒷이야기가 없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30년 전 서로 가슴 치며 만났던 이산가족들이 여전히 그 절절함을 갖고야 살겠는가. 어쩌면 차라리 만나지 않았던 게 나았다는 후회를 하는 만남들도 있을 것이다. 산 사람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월남서 다리를 잃어가며 지켜낸 가게 ‘꽃분이네’도 영화 끝난 후엔 팔렸을 것이다.
주인공 덕수는 그렇게 죽고 못 살던 가치들을 떠나보내며 평생 동안 차곡차곡 온몸에 채워온 눈물을 아버지 사진 앞에서 풀어놓는다. 자식, 손주 아직도 여전히 지켜내야 할 가치들은 남아있지만 더 이상은 그럴 힘이 없다. 더 이상은 본인 몫이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가 떠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 삶의 허무, 그 페이소스가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얼핏 ‘감성팔이’라고 비판한 댓글을 본 듯한데 말마따나 감성을 참 잘 팔았다. 벌써 천만명이상이 보았다면 상술만 좋은 것이 아니라 ‘감성’이란 품목이 혹할만한 상품이란 말 아니겠는가? 적어도 이념팔이 보단 훨씬 수요층에 어필한 모양이다.
최근 서초의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를 끌던 가장이 빈곤이 두려워 아내와 두딸을 살해했다가 잡혔다. 안산에선 별거중인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가장이 엉뚱하게 아내의 전남편집을 찾아가 그를 죽이고 막내 의붓딸을 죽였다. 가장이란 위치가 형편없이 일그러진 단례이다. 이즈음 그렇게 빛바랜 가정을 찾아보자면 어디 한둘일까? 배우 황정민이 ‘국제시장’속 덕수로 분해 천만명 넘는 사람들에게 팔아넘긴 감성이 이 삭막한 세상을 조금 물기 돌게 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