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틱, 택, 톡] 감성팔이 영화 ‘국제시장’에 바라기를..

스타뉴스 김재동 기자 2015.01.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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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의 틱, 택, 톡] 감성팔이 영화 ‘국제시장’에 바라기를..


지난 13일로 영화 ‘국제시장’이 1천만관객을 동원했다. 구랍 17일 개봉 이후 28일만에 세운 기록이라고 시끄러웠다. 역대 14번째고 2015년의 첫 1천만관객 돌파 영화란 타이틀이 온갖 기사 앞에 수북하다. 엉뚱하게도 이데올로기 논란이 불거지더니 흥행엔 오히려 보탬이 된 모양이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후배가 있어 물어봤다. “봤니?” “예” “그래 소감은?” “아빠한테 까불면 안되겠더라구요”



누군가의 아비 된 입장이어선지 ‘좋은 영화군’ 싶어 봤다. 허무한 영화였다. 아버지 얘기라기엔 애들 키운 얘기가 없고 아들 얘기라기엔 부모얘기가 적다. 형제얘기라기엔 형제자매가 안보이고 부부이야기라기엔 연애만 그럴듯하고 만다. 물론 석세스스토리도 아니다. 그냥 한 남자가 살아온 이야기다. 그 남자 삶의 가치가 오롯이 '가족'일 뿐이다. 왜? 영이별하고만 아버지의 당부도 당부지만 그 시대의 가치가 그랬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덕수'연배의 선배들은 내 주변에서만도 많이들 그렇게 살아왔다.

한때 드라마 작가를 꿈꾸던 시절 “내 얘기 쓰면 히트칠텐데”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은데 놀란 적이 있다. 들어보면 거대왈 심드렁해지는 얘기지만 본인들은 대단히 극적으로 기억하고 있곤 했다. 당시의 내게, 영화 속 덕수가 “내 얘기 한번 들어볼라나?” 하고 말을 꺼냈다면 왜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만들기 힘든지 시시콜콜 설명해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폐일언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면의 옆자리 아저씨와 함께 눈물 한줄기 서로 흘려가며 영화 잘 봤다. 어쩜 그렇게 아버지, 아저씨, 아는 형님 얘기 같은지.. 게다가 그 이산가족 상봉이란 소재는 남성 호르몬 왕성하던 30년 전에도 눈물을 강요하더니 이번에도 여지없다. 이산가족도 없으면서 왜 그런대? 물을 것도 없다. 성현 공자가 사람다움을 얘기할 때 제일 앞머리에서 밝힌 측은지심 때문이려니. 그렇게 제작팀은 그 시대 사람들 사이에 흔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버무려 공감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작가 꿈 접기를 얼마나 다행인지..

스크린에선 몇 십 년을 이웃해 의지했을 고모의 죽음은 물론 어머니의 죽음마저도 묘사되지 않는다. 주인공 평생의 트라우마, 흥남서 잃어버린 여동생도 이산 가족 상봉 때만 나오고 뒷이야기가 없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30년 전 서로 가슴 치며 만났던 이산가족들이 여전히 그 절절함을 갖고야 살겠는가. 어쩌면 차라리 만나지 않았던 게 나았다는 후회를 하는 만남들도 있을 것이다. 산 사람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월남서 다리를 잃어가며 지켜낸 가게 ‘꽃분이네’도 영화 끝난 후엔 팔렸을 것이다.

주인공 덕수는 그렇게 죽고 못 살던 가치들을 떠나보내며 평생 동안 차곡차곡 온몸에 채워온 눈물을 아버지 사진 앞에서 풀어놓는다. 자식, 손주 아직도 여전히 지켜내야 할 가치들은 남아있지만 더 이상은 그럴 힘이 없다. 더 이상은 본인 몫이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가 떠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 삶의 허무, 그 페이소스가 깊은 울림을 준다.


얼핏 ‘감성팔이’라고 비판한 댓글을 본 듯한데 말마따나 감성을 참 잘 팔았다. 벌써 천만명이상이 보았다면 상술만 좋은 것이 아니라 ‘감성’이란 품목이 혹할만한 상품이란 말 아니겠는가? 적어도 이념팔이 보단 훨씬 수요층에 어필한 모양이다.

최근 서초의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를 끌던 가장이 빈곤이 두려워 아내와 두딸을 살해했다가 잡혔다. 안산에선 별거중인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가장이 엉뚱하게 아내의 전남편집을 찾아가 그를 죽이고 막내 의붓딸을 죽였다. 가장이란 위치가 형편없이 일그러진 단례이다. 이즈음 그렇게 빛바랜 가정을 찾아보자면 어디 한둘일까? 배우 황정민이 ‘국제시장’속 덕수로 분해 천만명 넘는 사람들에게 팔아넘긴 감성이 이 삭막한 세상을 조금 물기 돌게 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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