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라는 권력으로 가난과 싸우는 법

머니투데이 이강백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대표 2015.01.03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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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 사회적 경제의 눈]사람을 중심에 둔 경제행위, 공정무역

편집자주 사회적 경제는 자본보다는 사람, 수익보다는 가치가 중심이 되는 경제 즉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을 뜻한다. 여야는 정부나 기업이 해소할 수 없는 사회 문제를 사회적 경제로 해소하자며 각각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을 발의했다. 여야의 전망대로 올해 안에 이 법이 제정되면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사회적 경제에 법적 실체를 부여하는 국가가 된다. 머니투데이는 국내외 사회적기업·협동조합·비영리단체·소셜벤처 등 사회적 경제 현장 활동가들의 소식과 최신 동향을 전하면서 사회적 경제의 시대를 준비하고자 한다.

'구매'라는 권력으로 가난과 싸우는 법


필리핀의 원주민 아이타(Aita)족은 자신들의 땅에서 금광이나 자원이 발견되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난다. 1만 년이나 그 땅에서 살아왔는데도 말이다. 소유권이 적힌 땅문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던 셰이 컬린(Shay Cullen) 신부는 숲속에 널린 야생의 망고나무를 보았다. 그는 망고를 따서 팔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망고를 가져가봐야 상인들이 형편없는 가격으로 후려치고 심지어는 돈을 지불하지도 않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래서 시장에 망고를 파는 일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신부는 공정무역의 방식을 통해 그들에게 시중에 거래되는 망고보다 두 배를 더 지불하고 별도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마음먹었다.



공정무역의 선구자이자 필리핀 빈민의 성자라고 불리는 컬린 신부의 공정무역 망고사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프레다재단은 농민들로부터 망고를 구매하여 공정무역의 방식으로 수출하고 판매수익으로는 기금을 조성한다. 이 기금은 학교를 설립하고 수확된 망고를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륜차를 사서 지원하는 데에 쓰인다.

컬린 신부는 원래는 감옥에서 출소하는 청년들의 일거리를 제공하고 자립을 돕기 위해 1975년에 수공예품으로 공정무역을 시작했다. 1992년부터는 가난한 농부들, 소수민족을 돕기 위해 공정무역 망고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을 모색하고 아동노동 등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신부는 필리핀에 아직도 거의 300만 명에 가까운 아동노동자들이 있다고 했다. 연 1만 명 이상의 어린아이들이 필리핀 감옥 안에서 학대를 경험한다. 특별한 범죄를 짓지 않고 거리에서 구걸만 했는데 감옥에 갇힌 아이들도 많다. 신부는 이들을 구출하여 정서적으로 회복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난 11월 방한한 컬린 신부로부터 참 부끄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필리핀에 한글로 섹스바를 홍보하는 간판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곳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 한국인 포주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공식적으로 매년 약 45만 명의 한국의 남성들이 필리핀으로 섹스관광을 간단다.

필리핀에서 번창하는 산업 중에 하나가 성매매산업이다. 성매매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중 많은 수가 놀랍게도 인신매매를 통해 조달된다. 문제는 아동들이 인신매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풍 하이옌으로 수십만 명이 극심한 피해를 본 중부 사마르 섬에서 어린아이들의 인신매매가 심각하게 증가하고 있다.


인신매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성매매업체에 여자아이들을 공급하는 조직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농촌으로 간다. 가난에 시달리는 부모들에게 아이를 백화점에 취업시켜주겠다고 하고선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아이들을 데려온다. 그리고 섹스바에 넘기는 것이다. 농민들이 처한 극심한 어려움이 이런 상황을 만든다.

이런 현실에서 망고는 영세한 농민들과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망고나무 한 그루로 건망고를 만들어 수출하면 어린이 두 명의 1년치 학비를 마련할 수 있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살 수 있다. 이 망고는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으로 온다. 농약과 비료 없이 자연의 힘으로 키워 방부제나 색소 없이 자연의 맛을 낸다.

컬린 신부는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무역을 통해 세상의 빈곤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매는 권력"이라며 "그 사실을 아는 것, 그런 지식이 권력"이라고 말했다.

이 권력으로 구매자는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정당한 시스템을 원해야 하고 그것을 외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 말이다. 그 시스템은 돈이 아닌 사람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구매라는 권력, 그 힘을 아는 지식이라는 권력을 통해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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