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데 뺨맞고 물맞고' 정유업, 유가·관세·배출권 '삼중고'

머니투데이 김훈남 기자 2014.12.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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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세수확보위해 납사 제조용 원유에 관세…배출권 시행과 더불어 내년 경기도 암울

탈출구가 없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정유업계에 정부발 '규제폭탄'이 떨어졌다.

정부가 그동안 면세였던 납사(나프타) 제조용 원유 수입분에 대해 최대 2%의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보름 뒤면 시행되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에서도 넉넉지 못한 배출권을 배정받았던 업계는 국제유가 하락세까지 겹쳐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정유업계 삼중고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정유업계 삼중고 /그래픽=김지영 디자이너


17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2015년부터 납사 제조용 관세에 대해 환급해주던 관세 3%를 최대 1%까지 줄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당초 정부는 수입원유에는 3%의 관세를 매기는데, 이 가운데 납사를 만드는 물량에 대해선 매겼던 관세를 환급해줬다. 납사를 직접 수입할 경우엔 관세가 붙지 않기 때문으로 수입산 납사와 국내산 제품의 형평을 맞추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관세환급률을 1%로 줄일 경우 납사 제조용 원유에도 2%의 관세가 붙는 결과로 이어진다. 업계는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업계는 정부의 환급률 하향으로 인해 당장 내야할 관세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납사 제조용 원유수입량은 1억3800만배럴로, 3300억원의 관세 환급이 이뤄졌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납사를 제조한다고 가정하면 최대 2200억원대 세금을 내야하는 셈이다.

일본산 납사에 대한 경쟁력은 더 약해질 전망이다. 국내 석유화학업체는 해외에서 55%, 국내에서 45%가량의 납사를 구입하는데 해외 물량 중 상당수가 일본산이다. 일본의 아베정부가 엔저 정책을 유지하며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 것을 감안하면 우리정부의 관세환급률 하향은 우리 정유업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납사제조용 원유 관세 환급률 하향은 연말 적자 위기에 있는 정유사의 최대 현안 중 하나"라며 "세수를 확보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시기도, 방법도 최악의 수"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내년 시작되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역시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1일 탄소배출권 적용대상 기업별로 배출권 할당량을 통보했다. 정유업계는 정부에 총 6000만여t(톤)의 탄소배출권(KAU)을 신청했으나 이 가운데 배정받은 양은 5633만톤에 불과하다.

나머지 370여만톤은 업계가 생산량을 줄이거나 탄소저감 장치를 새로 설치해야하지만, 향후 업황 회복 시 생산량 증가 가능성과 그동안의 탄소저감 노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받은 배출권할당량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다들 배출권을 반영해 내년 사업계획을 짜내느라 정신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난 정권에서 고유가 상황에 맞춰 짜놓은 규제를 그대로 둔 채 새로운 규제만 생겨나고 있다"며 "규제를 하려거든 동시에 현재 업황에 맞도록 기존 규제를 손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성토했다.

한편 국내 정유4사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정제마진(원유를 석유제품으로 팔았을 때 남는 이익) 약세와 글로벌 경기회복 부진, 올해 원화강세 및 국제유가 급락의 여파로 사상 최초로 연간 1조원대 손실이 유력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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