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퇴직금도 재산분할 대상' 이끌어낸 女변호사

머니투데이 김정주 기자 2014.12.2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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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양정숙 변호사, 서울변회 회장 여성으로 첫 출사표…"변호사 특권의식 버려야"

2014.12.05. [피플]양정숙 변호사 인터뷰2014.12.05. [피플]양정숙 변호사 인터뷰


"요즘 청년변호사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근무조건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제가 가진 노하우와 경험을 나눠 변호사 일을 즐겁고 보람되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오는 1월26일 치러질 제93대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 여성 최초로 출사표를 던진 법무법인 서울중앙 양정숙 변호사(49·연수원 22기)의 후배 사랑은 각별하다. 여성 변호사가 많지 않았던 1993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 22년째 일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전관이 아닌 20대 미혼 여성이 남성 중심적인 법조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험도 없는 어린 나이에 송무를 맡다보니 힘든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법원에서 혼나기도 하고 당사자에게 봉변을 당하거나 로펌 직원들에게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양 변호사는 "사람이 구속되느냐 마느냐, 유죄냐 무죄냐, 전재산이 걸린 민사사건에서 물어볼 곳도, 배울 곳도 없어 막막한 적이 많았다"며 "후배들은 그런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 법조인을 평가절하하던 분위기 속에서 실력으로 평가받고 발돋움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점도 한 몫했다. 청년 변호사들의 멘토를 꿈꾸는 그의 후배 사랑이 남다른 이유다.



양 변호사는 지난 7월 이혼 시 장래 퇴직금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 낸 주인공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해 대법원이 20년만에 퇴직금과 퇴직연금의 재산분할 기준을 다시 설정한 판례로 큰 주목을 받았다. 퇴직금과 퇴직연금도 부부의 재산형성 기여도에 따라 공평하게 나눠야한다는 취지다.

양 변호사는 "결혼생활 중 여성은 가사와 육아를 담당하고, 결혼으로 경력이 단절된 채 이혼하게 되면 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하다"며 "가정 내 경제와 재산분할에 있어서 정의와 형평에 맞게 합당한 기준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과 대한변호사협회 감사 등 중책을 맡아 온 양 변호사는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스스로 공익활동이 취미라고 밝힐 정도로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다. 양 변호사는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는가 하면 한센인권변호단의 위원으로 강제낙태·단종을 당한 한센인들에게 국가 배상 승소판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해 강제동원·강제 노역을 당한 한센인들에게도 1인당 1억원씩 총 500억원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법까지 제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꿈 속에서도 재판을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결국 그를 이끄는 건 분쟁을 해결했다는 보람과 성취감이다. 양 변호사는 "일할 땐 회의가 들기도 하고 저 역시 힘들 땐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면서도 "사건이 잘 마무리되거나 합의가 이뤄져 갈등과 분쟁이 해결되는 것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굵직굵직한 결과물을 낸 그에게 서울변회 회장 도전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여성 후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 속에서 도전장을 내미는데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양 변호사는 "여성 변호사가 4000명에 육박하는데도 변호사업계에서는 결혼과 출산·양육의 문제로 여성 채용을 꺼린다"며 "법률시장이 어려운 때야말로 '부자 서울회, 가난한 회원'의 구조를 바꾸고 회계 투명성을 위한 살림꾼이 필요하다"고 출마 이유를 밝혔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변호사들을 위해 반값회비와 300만원씩 내는 입회비 유예제도 및 분할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를 얻어 강제개업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울변회 내 공간을 만들어 장기임대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2조원대에 이르는 법률시장 규모가 정체되고 매년 배출되는 변호사가 2000여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변호사들이 기존의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양 변호사는 설명한다.

양 변호사는 "대형로펌 대 개인변호사, 청년변호사 대 기득권변호사의 대립과 반목으로 더 어려워진 변호사 업계가 이제부터는 대동단결 해야만 불황을 극복할 수 있고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변호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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