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도 내겐 그림의 떡"…처벌은 없고, 개정안은 표류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2014.12.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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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2014 근로자리포트-⑥최저임금]있으나 마나한 최저임금법…개정법안 봇물 '논의는 제대로 안돼'

편집자주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에 관한 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 근로자에 관한 법은 많습니다. 이 법들은 근로자의 근무시간, 임금, 휴가 등 근로자들의 일상생활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은 잘 갖춰져 있지만 근로자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합니다. 법과 동떨어진 현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은 1) 근로자 관련법과 현실의 괴리를 확인하고 2) 원인을 추적하고 3)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연재기간 동안 임금, 근로시간, 휴가, 정년 같은 직장인 이야기에서부터 알바생, 인턴, 비정규직, 파견근로자 등 다양한 근로 현실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올해 48살의 이 모씨. 남편이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게되면서 2년째 여관과 모텔 등 숙박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허리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침대 시트를 갈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 하루가 다 간다.

근무 시간 중 별도의 휴식시간이 없고 비번을 제외하고 쉬는날이 없다보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수면 부족에 만성 피로와 두통, 불규칙한 식사에 따른 위궤양 등 질환을 달고 산다. 하지만 손에 지문이 지워지면서까지 일해서 한달에 받아가는 돈은 150만원도 안된다. 이 씨는 사장이 최저임금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업주와 서면 계약 체결 없이 구두 계약 형식으로 일해오면서 4대 보험을 비롯한 법정 복리후생 혜택도 누리지 못한 사실도 알게 됐다. 사장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해 밀린 월급을 달라고 얘기했지만 그만두라는 답변만 들었다.

가장 형편이 어려운 고2 김모 양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치킨집에서 일을 하게 됐다. 주급을 받기로 했는데 따져보니 평균 시급이 5000원에도 못미쳤다. 올해 최저임금은 5210원이다. 사장에게 계산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일하는 중간에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고 옆 친구와 얘기를 했다는 이유로 시급을 깎았다는 것이다.



지각을 할 경우에는 머리를 주먹으로 맞기도 하고 손님들로부터 신체 접촉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을 그만둬도 이직할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항의하기 힘들다고 김 양은 말한다.

한국생활 3년차인 우즈베키스탄 출신 스비아타씨는 지난달 해고됐다. 월급이 너무 적어 고용주에게 항의를 했다가 근무 태만과 무단 결근을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그의 계약서상 월급은 116만7040원이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올 최저시급 5120원을 곱해 산출한 금액이다. 하지만 실제 노동시간(11시간)을 대입하면 시급은 법정 최저시급의 73% 수준까지 떨어진다. 하루 노동시간을 11시간으로 설정하고 급여는 8시간으로 계산한 것이다. 스비아타씨는 지난해 여름에는 손가락이 절단돼 장애 판정까지 받았다. 그는 "한글을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일을 안 했다'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하고 해고시켰다"며 "컨테이너에 살며 한 달에 두 번만 쉬고 힘들게 일했는데 왜 이렇게 해고를 당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국내 이주 노동자는 25만여명, 10명 가운데 2명은 스비아타씨 처럼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지난달 서울에 거주하는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15~19세 10대 여성 5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김 양처럼 10대 여성이 받는 평균 시급은 5126원으로 최저임금 5210원보다 84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여성들이 많이 일하는 커피전문점의 경우 65.3%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시급을 주고 있었다.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이 각각 59%, 53.7%로 그 뒤를 따랐다.

박근혜 정부 들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계속 늘고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지난달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분석해 내놓은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올해 최저임금(시급 5210원)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12.1%로 나타났다. 전체 노동자 1878만여명 가운데 227만명으로 8명에 1명꼴이다. 최저임금 미달률은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엔 9.6%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인 지난해엔 11.4%로 껑충 뛰었고 올해 들어 비중이 더 늘었다. 불과 2년 만에 57만명이나 증가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이처럼 최저임금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늘면서 법을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하지만 개정안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된 채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은 지난 7월 최저임금의 기준은 전체 근로자의 평균 통상임금의 50% 이상이 되도록 한다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인영 의원은 "최저임금이 근로자의 임금불평등과 근로빈곤의 문제를 완화시키는 중요한 기준임에도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근로자 월평균 총액 262만원(2013년 기준)의 38%에 그치는 등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이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경우 최저임금을 5인 이상 정규직 근로자 평균임금의 50%로 권고하고 있고 유럽연합은 최저임금이 평균임금의 6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도 최저임금의 현실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 외에도 최저임금의 하한을 상향조정하는 내용의 동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지만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물가상승률을 추가하고 최소한 전체노동자 평균 정액급여의 50% 이상이 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물가인상률 등을 포함시키고 하한선을 전체근로자 임금 평균의 50%로 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도 최저임금 결정기준 요소에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을 추가하고 소득분배 상황이 개선될 수 있는 합리적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방향을 제시한다는 표현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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