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많은 연말연시, 약속 관리 어떻게 할까

머니투데이 권성희 부장 2014.11.2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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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약속 많은 연말연시, 약속 관리 어떻게 할까


연말연시는 약속의 계절이다. 그저 달력상으로 구분된 1년의 마지막이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마감하는 모임을 갖는다. 1년에 한번 가량 만나는 사람들이 이 시기를 노려 만난다. 회사 동료와 초중고교 동창, 대학 동창, 각종 종교와 취미와 관련된 사람들이 이 때 모임을 잡는다.

연말연시 약속이 늘어날 때마다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유명한 펀드매니저다. 수년 전이었다. 연말에 그 펀드매니저를 후배 한 명과 만났다. 한달 전쯤 약속해놓은 만남이었다. 저녁을 먹는 중에 그 펀드매니저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전화 통화는 이런 내용이었다. "그래, 다들 나왔구나. 오늘 난 못 갈거야. 친구들에게 안부나 전해주고. 그래 다음 모임 때는 얼굴 보자. 미리 날짜만 알려줘."



나와 약속이 겹쳐 무슨 모임을 못 간 것 같았다. 미안한 마음에 물었다. "저 때문에 중요한 모임에 못 가셨나봐요?" 그는 "아, 1년에 한번씩 가까운 동창 예닐곱명이 만나는데 그 모임이예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앗, 그럼 저랑 약속 조정하시고 거기 가시죠." "이 약속이 선약인데요." 그는 너무도 담담하게 그리 말했다. 그 당시 나는 업무가 증권이라 그와 자주 전화했고 자주 만났다. 그날 약속은 그저 '한 해가 가기 전에 저녁 한번 먹자'며 서로 오가며 했던 말을 실현한 자리였을 뿐이다. 그가 만약 1년에 한번 만나는 동창 모임이 잡혀 약속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나는 당연히, 아무런 섭섭함도 없이 그러자고 했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털어놓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냥 약속이 생기면 그 약속 지키고 그 날 다른 약속은 안 잡아요. 약속을 잡아놓은 날 다른 약속이 갑자기 생겨도 선약을 지켜요. 설사 사장이 부르는 자리라도 선약 자리에 가요." 이게 그의 인생 원칙이었다.



여기엔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갑작스럽게 중요한 약속이 생기면 바꿀 수도 있지'라든가 '1년에 한번 만나는 친구들인데 선약을 조정해야지'라든가. 그의 '선약 우선주의'를 비판할 소지는 많다. 그렇다면 다음 사례는 어떨까.

어느 목요일 저녁에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난 다음날 해외 출장이 잡혀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인천공항에 가야 했다. 그 약속은 금융업계에서 친하게 지내던 한 사람과 후배 하나와 나, 단 세 사람의 사적인 자리였다. 미루자고 하면 미룰 수는 있었지만 펀드매니저와 약속에 대한 일화를 겪은 뒤 약속은 되도록 조정하지 않는다는게 내 원칙 비슷하게 됐다. 물론 나는 이 원칙을 그 펀드매니저처럼 철저히 지키지 못한다.

그런데 마침 약속한 업계 사람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 저녁 약속 가능하세요?" "네, 그런데 제가 낼 출장이 있어 술은 많이 못 마셔요." "그럼 미루시죠." 약속을 미루자는 그 문자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 전화했다. "전 괜찮아요. 2박3일 출장이라 짐 쌀 것도, 준비할 것도 없어요." "에이, 그래도 미루시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 뭔가 중요한 약속이 생기셨죠?" 그러자 그는 "다른 약속도 있는데요, 또 출장 가신다니까 미루자는 거죠." 다른 약속이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선선히 "그러시죠"라고 답했다.


약속은 때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항상 우선순위에 따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누구를 언제 만날 것인지 약속하는 것 역시 우선순위에 따른 선택이다. 꽤 중요하다고 생각해 잡아놓은 약속이 우선순위가 더 높은 약속에 의해 교체되는 경우는 종종 생긴다. 이 때 상대방이 나를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지 드러난다. 모두가 '아이구, 그런 일이 있으면 가야지, 우리 약속이 대수인가'라고 공감하는 일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따라서 약속은 할 때부터 진지하게 해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내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시간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어떤 사람을 시간을 내어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다. 약속 많은 연말연시, 그 약속 하나하나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약속 많은 연말연시, 당신은 어느 곳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그 약속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약속이 곧 상대방에 대한 당신의 마음이고 그 약속이 소중한 당신의 인생을 이루는 일부가 되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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