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의 피의자는 구매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유니크로' 안전결제 문자메시지를 직접 조작해 보냈다. 안전결제 수수료는 본인이 부담한다고 했으며 입금이 확인되면 잠수를 탔다. /사진=피해자 제공
이달 초 이메일로 제보를 받았습니다. 원고지 12매 분량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구구절절한 사연과 1년 넘게 축적된 상세한 피해 정보, 방대한 관련 파일들… 피해자들이 함께 긴 기간 고생하며 취합한 자료를 보니 이들의 고생과 노력을 상상하고도 남았습니다. 별 기대 없이 클릭했는데,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본지 11월23일자 '[단독]20대 커플은 2년째 사기중…속수무책 사이버 물품사기' 참조)
'흔한 소액범죄'의 위상은 통계에도 드러납니다. 지난 5월부터 6개월간 경찰청의 인터넷사기 단속현황에 따르면 총 6037건 중 4929건(81%)이 물품사기로 나타났습니다. 주목할 점은 물품사기 중 소수·개인간의 직거래사기가 4891건(99%)으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건당 피해액은 직거래사기(180만원)가 쇼핑몰사기(1900만원)의 11분의 1 수준으로 소액이란 점입니다. 적발되지 않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개인 간의 사이버 물품사기 건수는 훨씬 많고 피해금액은 훨씬 소액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사례는 역설적으로 '흔한 소액사기' 근절과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보여줬습니다. 다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사기의 피의자 연령대는 10~20대가 82.2%로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비교적 쉽게 범죄에 발을 들일 수 있는 통로라는 뜻입니다. 그럴듯한 물품을 팔 것처럼 허위 글을 올리고 돈만 입금 받아 달아나는 단순 '먹튀' 사기는 수법이 간단해 다른 범행비용 마련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피해자들 연령대는 어떨까요? 단체카톡방을 꾸려 이번 사건에 공동대응한 피해자 30여명 대다수는 한 푼이라도 싼 값에 물건을 구매하려던 10~20대였습니다. 젊은이들을 등치는 젊은 사기꾼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들은 물품사기를 피해자들 탓으로 돌립니다. '무턱대고 선입금한 탓', ''안전거래'나 '더 치트'(사기범죄정보사이트) 검색을 안 한 탓'이란 겁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인터넷거래를 하도록 판을 벌여놓고 취약한 시스템으로 인해 양산되는 범죄를 방조하는 게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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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거래를 즐겨하지 않는 저도 몇 달 전 '중고나라' 카페에서 매진된 유명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다 사기를 당할 뻔했습니다. 대개 구매 희망자는 많고 물품은 적기에 싼 값에 원하는 물건이 나오면 혹하기 쉽습니다. 직접 만남이나 안전거래가 최선임을 알지만 조바심에 판매자의 요구대로 따르다 함정에 빠지기 쉬운 구조입니다. 이번 사건은 구매자가 '안전거래' 문자까지 조작해 보이는 등 사기수법은 더욱 치밀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20대 커플 피의자들을 붙잡으려는 피해자들의 공동대응은 눈물겨웠습니다. 고소장 제출부터 수차례의 계좌 지급정지 시도부터 국민신문고 민원제기, 수사이의 신청, 담당 수사관에게 계속 전화해 떼쓰기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가피해를 막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보자는 이메일에서 "남들은 100만원 별 거 아니라고 하지만 제겐 몇 달에 걸쳐서 공부하며 힘들게 모은 돈"이라며 "이런 범법행위가 공공연한 사회의 신뢰 회복과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힘쓰고 싶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1년 넘게 도주를 이어가던 피의자는 본지 보도 사흘만인 26일 검거됐습니다. (☞본지 11월26일 '2년간 수천만원대 인터넷 사기 20대男…결국 덜미' 참조)일각에서 경찰이 손 놓고 있다 여론이 집중되니 움직였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취재 결과 경찰이 수사를 중단했던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매일 밤잠을 설치며 바삐 근무하는 경찰들은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일부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수사관들로 인해 소액사기 피해자들 사이에 경찰에 대한 깊은 불신이 형성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수사 인력과 취약한 인터넷거래 보안체계, 소액 사이버 범죄에 대한 우리 모두의 인식 부족이 아닐까요? 소액사기의 피해는 작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