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9일 ML진출 기자회견에 나선 김광현./사진=뉴스1
한양대를 중퇴하고 태평양을 건너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가 1994년 4월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면서 시작된 한국인의 메이저리그 도전이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가고 있다.
한국야구는 류현진(LA 다저스)의 2년 연속 14승 성공과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의 7년간 총액 1억3000만달러(약 1439억원, 1달러 1107원 환산) 계약으로 세계 최고 무대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았다. 그런 사실을 반영한 듯 유독 2014시즌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대거 한국 프로야구는 물론 아마추어구장까지 찾았고 SK 투수인 김광현 KIA 양현종, 그리고 넥센 유격수 강정호 등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추진하겠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궁금했던 것은 이런 기자회견을 개최하겠다는 발상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느냐는 것이다. 전례가 있었다면 당연히 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 기자회견은 메이저리그에 대해 SK 구단과 김광현이 가진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류현진이 포스팅에서 LA 다저스로부터 2574만달러(약 285억원)을 제시받았다는 것에 고무돼 ‘최소한 1000만달러(약 110억원)은 될 것으로 확신에 찼던 것이 분명하다. KIA 투수 윤석민이 FA 신분으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가 금년 스프링캠프가 시작될 때까지 원하는 팀이 없어 방황한 사실을 간과했다.
결과는 빅마켓 구단이 아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써낸 200만 달러(약 22억 1000만원)였다. 느닷없었던 기자회견만큼이나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김광현을 보낸 대가인 입찰 금액으로 최소 100억원을 확보해 FA와 용병 계약을 통해 전력보강을 하겠다는 전략을 짠 SK 구단은 엄청난 오판으로 인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구단 차원에서 김광현의 메이저리그행을 승인한다고 공개적으로 기자회견까지 한 마당에 합당한 대우가 아니라고 번복하기도 곤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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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김광현은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기자회견에서 메이저리그 진출과 중요한 관계가 없는 개인사인 ‘결혼 발표’까지 한데다가 포스팅 금액은 자신이 받는 것이 아니라 구단에 가는 돈이기 때문이다. 김광현은 현지 에이전시로 알려진 ‘MDR’을 통해 샌디에이고 구단과 계약을 맺게 된다.
김광현으로서는 윤석민이 지난 2월 뒤늦게 볼티모어와 계약할 때 3년간 총액 557만5000달러(약 61억7000만원)를 보장 받았다는 보도를 떠올리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실패하면 SK 유니폼을 다시 입으면 되고 선례를 감안할 때 계약금까지 받아서 한국프로야구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러나 김광현은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하고 마이너리그 생활을 하게 되면 가족이 얼마나 고생할 것인가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 겪게 될 좌절과 절망의 깊이를 알 수도 없다.
아마추어 출신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할 때 120만달러(현재 환율 13억2000만원)의 계약금을 받았다. 당시 분위기는 10만달러(약 1억3200만원)만 줘도 메이저리그로 달려갈 판이었다. 그러나 에이전트 스티브 김은 정확하고도 최선의 평가를 받아내고 계약을 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바와 같이 김광현은 한국프로야구 에이스급 투수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메이저리그로 가고 SK 구단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내주는 실수를 범했다. 구단과 선수 개인의 일이기는 해도 한국야구 전체의 자존심과 경기력 수준 유지 차원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최고 선수들이 헐값에 떠나는 것을 무작정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광현의 몸값은 앞으로 메이저리그의 한국 선수를 데려가는 기준이 된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이 꿈이고 불러만 주면 가겠다는 선수들이 한국에 있다. KIA 양현종의 포스팅 실패도 같은 그 후유증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면 된다. 굳이 비싸게 줄 필요가 없어졌다. 김광현과 양현종이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을 생각하면 치욕적이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