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레터]기금수익 빼돌리기? 억울한 증권사

머니투데이 조성훈 기자 2014.11.13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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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레터]기금수익 빼돌리기? 억울한 증권사


한 국회의원이 특정 증권사가 정부기금을 운영하면서 얻은 수익 중 1200억원을 민간법인 계좌와 개인계좌로 넘겼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국민의 수십조원대 공적기금이 부실 운영되고 있다는 의미로 검찰수사와 해당 증권사의 퇴출까지 가능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해와 과장이 섞인 주장이라는게 금융당국과 업계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은 현대증권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기획재정부(복권기금), 국토교통부(국민주택기금), 고용노동부(고용보험기금), 우정사업본부(우체국 예금, 우체국 보험) 등 4개 기관이 위탁한 정부기금 약 30조원을 랩어카운트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약정 수익률보다 초과 발생한 수익을 대기업과 일반고객 계좌로 빼돌렸다고 12일 주장했습니다. 그 금액이 무려 1200억원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랩어카운트에 담긴 CP(기업어음)와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를 일반 채권과 달리 시장가보다 낮은 장부가로 헐값에 넘기면서 나타난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 정부기금을 관리하는 다른 증권사로 조사를 확대하다면 '수익 빼돌리기'로 인한 정부기금의 손실액이 1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김 의원측은 CP와 ABCP가 감독 사각지대에 있다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이에대해 현대증권 업계의 기금운용 방식을 따랐을 뿐 수익을 유용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랩어카운트는 고객이 맡긴 자금을 증권사가 주식이나 채권,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종합자산관리 계좌입니다. 현행법규상 증권사는 랩어카운트로 일정 수익률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다만 기금들은 일정한 수익률을 요구하는 게 관행이기 때문에 증권사들은 기금의 기대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자금을 주로 금리형 상품 중심으로 운용합니다.



증권사는 금리 변화에 따른 수익 변동을 회피하기 위해 운용기간 중 수익이 고정된 상품을 선호합니다. 이에 따라 채권과 함께 CP와 ABCP 등 금리형 상품을 함께 편입합니다. 채권은 거래가 빈번해 가격 형성 과정이 비교적 투명합니다. 반면 CP와 ABCP는 거래가 빈번하지 않고 수요가 많지 않은 특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처분시에도 장부가 평가를 통해 일정한 할인률을 적용해 거래하는 게 관행입니다. 증권사들이 이런 단점에도 CP와 ABCP를 일부 편입하는 이유는 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기금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별도의 운용평가회사를 통해 수익률 변화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CP는 채권과 달리 거래가 빈번하지 않고 수익률도 들쑥날쑥해 가격 형성 기능이 제한적"이라며 "다른 매매 사례를 감안해 일정 가격 범위를 벗어난 경우에만 불공정 거래로 판단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김 의원 주장처럼 기금용 랩에 편입한 CP를 헐값에 다른 고객에 넘겨 1200억원에 이르는 손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CP와 ABCP 거래 관행을 감안하지 않은 과장된 주장이라는 지적입니다. 명확한 시장가격이 없는 CP와 ABCP 운용과 관련해 1200억원의 수익을 빼돌렸다고 주장할 근거가 뚜렷하지 않다는 겁니다.


다만 이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 빌미를 현대증권이 제공한 것은 맞습니다. 지난 7월말 금감원 정기검사 과정에서 현대증권의 한 직원이 액면가 3억원짜리 CP에 대해 할인율을 지나치게 높게 적용해 지인에게 넘겨 1억 1700만원의 기금 수익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해당 직원은 형사고발된 상태이며 현재 퇴사했습니다. 금감원은 내달 검사 결과를 토대로 현대증권과 해당 직원을 징계할 방침입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현대증권 내부에서 기금 일부를 유용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맞지만 이를 두고 기금 전체가 부실하게 운용되는 양 업계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안그래도 자본시장에 대한 고객 신뢰가 무너진 상황인데 근거가 모호한 주장으로 업계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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