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둘러쓴 중동ITU회원국 대표들/사진=ITU
손님 중에는 히잡(얼굴을 가리기 위해 아랍권 여성들이 두르는 천)을 착용한 중동 출신 여성도 눈에 띄었다. 보아하니 회의장에서 뜻이 맞아 급조된 이른바 '다국적 번개모임'이 분명해 보였다.
중동인들의 발길은 비단 부산 해운대 재래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만의 화제는 아니다. ITU 전권회의가 열리고 있는 부산 벡스코에서는 중동의 입김이 본회의 구석구석 스며들며, 연일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차기 개최국 결정은 내달 7일 폐막일 전에 열리는 마지막 본회의에서 결정되지만, 통상적으로 차기 전권회의 개최를 먼저 제안한 국가가 수용했던 것이 이제껏 관례였다. 윤종록 미래부 2차관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차기 회의 개최지는 아랍에미리트가 확정적"이라고 말했다.
아랍에미리트는 왜 차기 개최국이란 타이틀을 탐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계산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아랍에미리트는 ITU전권회의를 개최하면 국제화된 도시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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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가 지난 4월 두바이에서 ITU 개발총회격인 '2014 세계전기통신개발총회(WTDC-14)'를 개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아랍에미리트는 지난 2012년 같은 장소에서 인터넷 거버넌스(인터넷 발전과 활용을 위한 원칙·규범 등을 개발·적용하는 체계) 등을 논의하는 'ITU 전기통신세계회의(WCIT-12)'도 전략적으로 유치한 바 있다.
이상학 ITU 준비기획단 부단장은 "아랍에미리트는 회원국인 쿠웨이트나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뭔가를 벌여 아랍의 맹주가 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현 ICT 시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아랍에미리트는 '오일 달러'를 바탕으로 차기 대권을 향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22일 벡스코 제1전시장 1층 3B홀을 통째로 빌려 초청 오찬행사를 연다. 전날 중국이 3B홀 절반을 빌려 진행했던 것보다 더 크고, 부산 ITU 기간 중에선 최대 규모이다. 아랍에미리트가 '통 큰 선심'을 쓰는 것 같지만, 이날 회원국 전체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구애 전쟁'이 다각도로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있을지 모를 사무총장 선거 출마나 정책제안 등에서 표심을 얻기 위해 포석을 미리 깔아두기 위한 것. 미국·중국보다 치밀한 '한 수 위' 전략이란 주장이 곁들여졌다.
아디브 발루시 군/사진=ITU
아랍에미리트 대표단은 21일 10살 소년 아디브 발루시 군을 ITU 창립 150주년 기념식 특별연사로 무대에 세웠다. 의족, 청소 로봇, 휠체어, 스마트도어, 스마트스틱, 소방수 헬멧, 의료용 안전벨트 등 7개의 발명품을 개발해 '꼬마 발명가'라는 애칭이 붙은 그였다.
'세계 ICT의 미래'로 소개된 발루시군은 "우리 어린이들은 미래에 ICT를 이용하는 동시에 관련 정책을 수립할 주인공"이라며 "ICT 관련 정책을 세울 때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세상에는 아직 디지털 교육을 받지 못하는 많은 어린이들이 존재한다"며 "ITU 등에서 선진국의 디지털 기술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이들이 자국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발루시군을 통해 아랍에미리트 대표단은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데 일단 성공했다. 특히 앞으로 ITU가 짊어져야 할 역할론을 발루시 군의 입을 통해 전면에 제시하며, 이를 기꺼이 아랍에미리트가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린이를 강단에 세워 수많은 동정표를 얻고자 했던 전략이 제대로 적중한 셈이다. 회원국(193개국)들은 아랍에미리트의 이 같은 활약을 두고 '2인자의 역습'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