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담합 조장하는 정부, 소비자는 뒷전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부장 2014.10.20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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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누군가의 에세이집 제목처럼 세상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자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오동희의 思見]담합 조장하는 정부, 소비자는 뒷전


"이 법은 이동통신단말장치의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 질서를 확립하여 이동통신 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10월 1일부터 시행된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 제1조에 있는 법의 목적이다.



이 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가계 통신비용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가계통신비(이동통신요금과 단말기 구입비용)를 줄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동통신 시장과 단말기 유통시장을 '자유경쟁' 체제로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중·고등학교만 나와도 알 수 있는 경제학의 기본원리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수요 공급 곡선'만 보면 답은 나온다. 이동통신서비스나 단말기 사업자의 서비스·재화의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자연히 낮아지고, 수요는 증가한다. 반대로 통신서비스 수요가 늘어나고 공급이 제한적이면 가격은 당연히 올라간다.

가계통신비도 마찬가지다. 통신사업자나 단말기 공급업체가 자유로운 가격경쟁을 하면 당연히 국민은 더 싼 요금과 단말기 구입비용을 경험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통신요금을 '인가제'라는 규제에 묶어 통신시장의 담합구조를 유지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OECD 국가 중 유일무이하게 통신요금을 정부가 인가제로 묶어 규제하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가계통신비가 가장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부의 규제가 잘못됐으며, 그 규제의 지향점이 소비자를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가 규제를 하지 않으면 가계통신비는 내려간다'는 뻔한 답을 애써 외면하고, 단통법이니, 분리공시제니를 들고, 다른 곳에서 엉뚱한 오답과 희생양을 찾고 있는 것이다.

1991년 정부는 통신시장의 지배적 사업자가 약탈적 요금으로 후발사업자를 시장에서 밀어내는 것을 막기 위기 위해 요금인가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23년이 흘렀다.

정부의 보호로 23년간 제대로 된 시장경쟁이 이뤄졌다면 우리 국민의 가계통신비는 갈수록 저렴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지배적 사업자의 안정적 가격을 기준점으로 통신 3사가 거의 차별성 없는 요금제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 없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안정적인 인가제를 통신사업자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 23년간 유지돼 온 것이다.

그런데 20년간 안정돼 온 통신시장에 최근 몇 년 사이 문제가 생겼다. 대한민국 인구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통신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인구는 5094만(2013년 1월 1일 기준)인데 이동통신가입자수가 5633만명으로 과포화상태다.

내수산업인 통신서비스에 한계가 온 것이다. 휴대단말기 사업자처럼 전세계를 무대로 시장을 넓힐 수도 없는 한계에 봉착해 어찌됐건 5000만명의 인구범위 내에서 나눠먹어야 하니 결국 보조금 경쟁으로 상대 가입자를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열 보조금 경쟁으로 싼 단말기(보조금을 많이 지급한 단말기)를 미끼로 고객을 유인한 후에 보조금에 상응하는 수익을 통신요금에서 충당하니 요금이 내려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들은 2~3년 약정을 걸어 그 기간 동안 통신비에서 싸게 샀던 단말기 비용을 스스로 분납하는 조삼모사를 반복해왔다. 그러니 1위 사업자라 하더라도 경쟁을 통한 가격인하를 할 이유가 없다. 단통법은 쉽게 말해 정부가 통신사업자들에게 동일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담합을 유도하는 법이다.

만약 단통법이 없다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장이라도 동일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통신사업자들을 담합협의로 엄하게 처벌했을 것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 지금이라도 통신시장을 시장경쟁과 자율에 맡겨야 가계통신비는 자연히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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